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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결정적 순간

박민아・이두갑・이상욱, 『과학의 결정적 순간』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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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떤 일이든 ‘결정적’ 순간이 있다. 사실 나는 과학에서 결정적인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대해서도 좀 회의적이다. 이른바 ‘유레카’라고 하는 순간이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많은 위대한 과학적 발견에도 그런 순간을 딱 잡아 말하기 어렵지 않나 하는 게 내 생각이다. 과학의 발견은 주로 과정 속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순간’을 느끼거나, 그렇게 기술하고,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내가 연구 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게 그 연구에서 결정적 결과였다면 발견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여기고 쓸 수 있다. 당연히 그런 경우는 많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정말 중요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결정적 순간은 어떤 순간을 말하는 걸까? 좀 궁금하다.


그래서 이 책 『과학의 결정적 순간』에 딴지를 거는 것은 아니다. 제목을 그렇게 지었을 뿐이라는 것을 읽다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장에서는 특정한 순간이 과학의 흐름, 내지는 세상의 모습까지 변화시킨 것으로 쓰고는 있지만, 그런 경우도 그게 전부인 것처럼 쓰지는 않는다. 그 순간 이전의 과정이 있었고, 그 이후의 과정 역시 중요했다는 것을 저자들은 잊지 않는다.


갈릴레오 이후 23개의 장면(?)을 소개하면서 저자들은 이른바 표준적인 해석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갈릴레오의 『대화』와 얽힌 재판, 맥스웰의 업적에 대해서도, 막스 플랑크의 양자역학에 관해서도 표준적인 설명 대신에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는 보여준다. 볼츠만의 자살 원인, 밀리컨의 노벨상 수상 업적에 관해서도 비슷하다.


물론 과학자의 위대한 업적, 소중한 삶에 대해서 그대로 서술하고 있기도 하다. 기존에 많이 조명 받지 못했던 과학자들에 대해서는 그런 소개가 의미가 있다. 이를테면 맥스웰이 아니라 헤비사이드, 피츠제럴드, 로지와 같은 맥스웰주의자들, 하버드대 천문대의 헨리에다 리비트와 캐넌(물론 이들은 최근 많이 조명되고 있지만), 비토 볼테라, 마이라 괴페르트 메이어(정말 솔직히 이 과학자 이름은 처음 들었다), 그리고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DNA 구조와 관련한 이야기가 아닌)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 구조와 관련한 이야기 등등. 이걸 교훈적인 위인전 식이 아닌 과학사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더욱 마음에 든다.


그런데 좋게 읽었음에도 한두 가지 아쉬운 점을 끄적여 본다.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어떤 기준으로 이 ‘순간’들을 골랐는지에 대한 기준이 제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자 의미가 좀 뜰쑥날쑥한 걸 보면 암묵적인 기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또 하나는 화학이나 생명과학 쪽의 이야기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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