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배리, 『내게 없던 감각』
저자 수전 배리는 신경가소성과 입체시를 연구하는 과학자다. 그녀에게 특이한 이력은 그녀가 어릴 적부터 입체맹이었다는 사실이다. 심한 사시로 인해서 세상이 입체로 보이지 않고 평면으로 보였다. 그런데 40대 중반에 시훈련 치료를 받고 입체시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녀의 주요 연구 주제이기도 한 신경가소성을 입증하기도 하는 이 이야기는 올리버 색스가 소개하기도 했다.
그녀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은 백색증으로 시력을 잃은 리엄이고 또 한 사람은 청력 장애를 안고 태어난 조흐라다. 둘 다 10대에 인공수정체를 이식받거나 인공와우 수술을 통해 시력과 청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수전 배리는 이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혹은 이-메일 등의 수단을 통해 의사소통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현대 의학의 수술을 통해서 시력과 청력을 회복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게 아니다. 그들을 비롯한 많은 시력, 청력 장애자들이 수술 등을 통해서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는 과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본다고 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들린다고 그게 어떤 소리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적응해왔던 세계에 대한 상이 방해받고, 교란되면서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보고 듣는 것을 익혀 오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보고 듣는 것을 다른 비장애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수전 배리는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들과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곁들이며 보고 듣는 것이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고 듣는 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이런 일이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태어나면서 내재된 유전자는 물론 주위의 도움을 통해서, 숱한 훈련을 통해서 보고 듣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인식하지 않아도 이뤄지는 것이라는 것을 장애를 가졌다가 회복된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서 보이는 여러 특징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중 한 가지는,보고 듣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어떤 것이 생략된 상황에서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추측하고, 그것이 여러 착시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리엄과 같은 이는 보이는 대로 판단하기 때문에 여러 유명한 착시에 혼동되지 않는다(대신 계단 오르고 내리기 등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조흐라는 다른 사람들의 집단적인 속임수에 쉽게 속지 않는다.
수전 배리가 쓴 이 책은 올리버 색스의 전통을 잇고 있기도 하다. 사례를 통해서 어떤 질병과 그것의 원인, 치료 등을 탐구하고 있기도 하고, 인간을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도 함께 보여주고, 감동도 준다. 특히 마지막의 감동과 관련해서는 리엄과 조흐라의 노력뿐만 아니라 그들을 보살피고, 용기를 북돋우고, 함께 훈련한 리엄의 엄마 신디와 조흐라의 이모 나즈마의 것이기도 하다. 수전 배리는 이들의 이름을 책의 맨 앞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