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F. 루이스, 『생명전쟁』
“생명 연구의 최전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라는 부제를 달고는 있지만... 이 책이 미국에서 처음 나온 2008년에는 의미 있는 부제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조금, 아니 상당히 벗어난 얘기가 되어 버렸다(다 읽고 나서 서지 사항을 보니까 2010년에 번역해서 낸 책의 2판이다. 2010년이면 그래도 인정). 그래서 겨우 15년 동안 걸쳐 이뤄진 생명 연구의 눈부신 발전 속도를 실감케 한달까? 여기서 최신의 연구 결과라고 설명한 것들이 이미 과거의 연구 성과이고, 지나간 기술이 되어버린 것들이 적지 않다(줄기세포 기술 등). 또한 그후에 밝혀진 것으로 해서 잘못된 기술도 없지 않다(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전혀 유전자 교류가 없었다는 기술 같은 것). 유전자 편집 기술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내용을 통해 생명과학의 발달에 따른 생명윤리에 대한 논리, 혹은 근거를 음미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1장부터 4장까지의 내용이 그런 것인데, 인간과 다른 생명의 가치 비교, 인공수정이나 치료목적의 복제와 같은 기술이 불러온 사회적 문제에 대한 논의, 유전자 결함으로 인한 질병에 대한 유전자 치료 요법에 대한 첨예한 대립, 인간유전체 공개(역시 이미 오래전 얘기인 듯하다)에 따른 논란 등등은 생명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기술과 정도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논란이 되고 대화, 토의가 필요한 사항들이다. 이 중에는 어느 정도 논의가 모아지던 것도 있지만, 다시 원래대로 첨예한 대립으로 돌아간 것도 있다. 윌리엄 F. 루이스의 입장은 분명하지만(생명 연구는 충분히, 그러나 유전자 조작은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은 아주아주 신중하게), 그의 입장은 그 당시의 생명과학 수준에서 과학자로서 최선의 방안을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더욱 공고화해졌을 수도 있다.
1부의 내용(1부, 2부로 나누고 있진 않지만)이 주로 생명윤리와 관련된 것이었다면, 나머지 절반의 내용은 생명과학의 철학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의 협동에 관한 이야기, 뇌의 진화와 학습에 관한 이야기, 사회적 행동과 유전자 사이의 관계, 생명의 기원과 인간의 진화, 그리고 지구 생태계에 대한 우리의 책임에 관한 이야기 등. 2부의 내용은 역시 어쩌면 당시만 해도 새로운 얘기였을 수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얘기가 되어 버린 점이 없지 않다.
이 책을 통해서 여기에 인쇄된 글자를 넘어서 생명과학이,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에 이런 단계를 거쳤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또 생명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생명윤리가 여전히 확고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