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빈센트, 《사생활의 역사》
‘사생활(privacy)’이라고 했으니 빌 브라이슨의 책(《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가 떠올라 조금은 가벼운 책이 아닐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책은 가볍다). 서양의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프라이버시가 어떻게 지켜지고, 또 어떻게 지키려고 노력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다루고 있다.
1341년 한 미망인이 런던의 재판소에 제기한 소(訴)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이사벨이라는 미망인은 이웃의 창문을 통해서 자신의 집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며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며 소를 제기했다. 어떤 이웃에 대해서는 망루를 통해서, 혹은 구멍을 통해 엿볼 수 있다며 고소했는데, 런던의 방해죄 재판소는 모두 40일 이내에 시정하라고 통고했다.
이 사례는 중세에도 남에게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유럽은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고, 벽도 얇아 사적인 삶을 누리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집 안에서도 개인의 공간은 물론, 부부라 할지라도 둘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드는 것이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위의 재판 사례에서 보듯이, 그럼에도 어떻게든 혼자 있을 권리, 즉 프라이버시를 얻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면서 프라이버시는 확대되었을까, 아니면 축소되었을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데, 저자는 이 질문에 확정적인 답을 내놓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파악하자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는 프라이버시는 확대되어온 것이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자신만이 공간이 생기고, 혼자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우편제도도 정립되면서 사적인 편지가 안전하게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자동차도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해주는 현대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물리적인 프라이버시 확대와는 달리, 정보의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프라이버시는 또 다른 측면에서 축소되고 있다. 곳곳에 달린 CCTV는 우리의 행동을 낱낱이 감시하고 있는 듯하고, 국가나 혹은 사기업도 인터넷 이용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우리의 행동 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이 경고했던 사생활의 파괴는, 스노든이 그게 현실이 되었음을 폭로하기도 했다. 2014년 미래학자 제이콥 모건은 ‘프라이버시는 확실히 죽었다. 바로 우리가 프라이버시를 죽였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기도 했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14세기 방해죄 재판소의 소송으로 시작된 프라이버시의 역사는 일시적인 승리와 일상적인 패배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물리적 환경, 통신 시스템, 법적 구조, 친밀한 관계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온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동이 필요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여러 요인(개인주의와의 연관성, 광범위한 정치적, 이념적 맥락, 컴퓨터의 등장 이후 커뮤니케이션 혁명에 대한 부풀려진 희망과 두려움 등)으로 인해 프라이버시에 대한 정의나 상황도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사생활의 패턴이 변화한 것만은 분명하며 프라이버시는 재산권으로도 취급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프라이버스에 대한 문제가 매우 복잡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을 한 영화를 소개하며 맺고 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만든 《컨버세이션》이라는 영화다. 감청 전문가가 주인공이 자신의 일에 몰입하기 위해 자신이 녹음하는 타인의 삶에 전혀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접촉은 전혀 하지 않는다. 오로지 ‘해리 콜’이라 부르는 자신 집 열쇠만이 소중할 뿐이다. 결국 그의 삶은 파괴된다. 자신이 녹음한 연인의 대화가 무슨 말인지는 알지만, 전혀 반대의 해석을 하고 만다. 연인들 사이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서 저자는 코폴라가 ‘가장 심오한 형태의 친밀감인 긍정적 프라이버시와 황량한 고립인 부정적 프라이버시를 구분’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