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이면, 희생적 사랑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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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고,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고,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고,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없었고, 우리는 모두 천국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 천국을 등진 채 반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찰스 디킨스는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몇몇 인물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시대를 압축해서 그려내고 있다. 그 시대는 그가 첫머리에 쓰고 있는 문장의 형식처럼 서로 반대의 방향을 지향하는,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가 바라본 시대는 밝은 미래와 어두운 과거, 혹은 밝았던 과거와 어두운 미래였다.


당대 민중의 고달픈 삶을 비판적으로 그려냈던 찰스 디킨스는 프랑스 대혁명을 위대한 의지의 분출로 표현하지 않는다. 물론 생탕투안의 드파르주를 중심으로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하는 모습은 극적이지만, 구시대를 척결하고자 하는 프랑스 민중들의 행태는 무도해 보인다. 찰스 드네이를 귀족인 그의 아버지와 삼촌의 패악질을 이유로 사형에 처하고자 하는(시드니 카턴이 대신 그의 이름으로 죽었으니 결국 사형당한 거나 다름없다) 대혁명의 민중들에 대해 찰스 디킨스는 찬성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영국인이었던 찰스 디킨스가 프랑스에 갖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영국의 지배계급에 던지는 경고, 혹은 교훈이었을 것으로도 보인다. 저 도버 해협 건너의 라이벌 국가에서 벌어졌던 있는 일들을 보라! 어쩌면 그것이 당신들의 미래가 될 지도 모른다!


《두 도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눈부신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누구의 사랑이 그토록 눈부신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언뜻 생각해보면, 이 눈부신 사랑이 찰스 다네이와 루시 마네트의 것을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면, 그들 사이의 사랑은 고고하지만 단순하다. 대신 헌신적인 인물들이 많다. 루시 마네트에 대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곁 대신, 그녀의 곁을 지켜줄 찰스 다네이를 대신해서 기요틴 아래에 목을 내놓은 시드니 카턴이 그렇다. 혼신의 힘을 다해 사위를 구출하기 위해 애를 쓰는 마네트 박사가 그렇다. 젊은 시절 고객이었던 마네트 박사를 구출하고, 끝까지 그 가족을 돕는 은행원 자비스 로리도 그렇다. 루시의 유모 프로스 양도 그렇다. 또한 반대의 지점에서 혁명의 대의를 위해, 그리고 가족의 복수를 위해 조금도 타협이 없는 드파르주 부인도, 그녀 곁의 인물들도 어쨌든 헌신적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단어로 압축한다면, 그게 바로 ‘사랑’일 것이다.


이런 헌신적인 인물들을 그려내면서 찰스 디킨스는 결국은 찰스 다네이를 살려내고, 그와 루시 마네트의 사랑도 지켜낸다. 찰스 디킨스는 역사 속에서 인물들을 이야기하고, 인물을 통해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위대한 소설은 역사와 인물을 구분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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