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

마수드 후사인, 《아웃사이더》

by ENA


병적인 무관심 상태에 이른 데이비드

의미 기억을 잃어버려 단어를 기억하지 못하는 마이클

일화 기억을 잃고, 방금 만난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고 착각하는 트리시

밤마다 착시에 시달리는 와히드

주의력에 장애를 갖게 되어 오른쪽의 것만 인식할 수 있게 된 윈스턴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해 남들은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수

그리고, 자신의 팔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능력을 잃어버린 애나


뇌신경과학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올리버 색스를 떠올리고, 비교할 수밖에 없다. 올리버 색스를 최고의 뇌신경학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이 분야에서 글쓰기의 전형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편의 글에, 한 권의 책에 환자에 대한 증례와 환자의 삶과 자신의 생각, 그리고 과학적 분석 등을 편안하면서 통찰력 있게 담곤 했다. 그는 한 명의 환자 개개인에 집중했고 많은 독자들이 그의 시각에 공감했다. 그래서 많은 책들을 ‘제2의 올리버 색스’와 같은 수식어를 달고 홍보하곤 한다. 그러나 ‘제2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 대체로 그렇듯이 올리버 색스에는 모자란, 무엇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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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드디어 올리버 색스 못지않은 뇌신경과학 책을 찾았다.

한 명의 환자를 만나고, 그의 삶의 행적을 세심히 듣고 추적하면서 공감하고, 과학적 분석을 통해 환자의 행동과 문제의 원인을 밝히면서 치료하고자 하는 신경학 의사이자 뇌신경학자. 거기에 역사와 세상에 대한 폭넓고 깊은 관심, 그리고 그것들을 환자와 질환과 연결하는 통찰력. 그리고 모든 글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여기서 하나의 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원서의 제목 <Our Brains, Our Selves> 대신 “아웃사이더”라고 우리말 제목을 조금 달리 달고 나왔는데,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뇌신경질환은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데, 정체성은 개인적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개인적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는 뇌신경질환은 사회적 정체성의 위기까지 이어진다. 바로 이 사회적 정체성의 위기가 바로 환자를 ‘외부인’, 즉 ‘아웃사이더’로 만들고, 사회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바로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특히 여기의 환자 여럿이 다른 사회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이, 혹은 그 후손이라는 점에서 이중 삼중으로 외부인(아웃사이더)에 관한 문제의식은 뚜렷하다.


이런 뇌신경과학, 뇌신경질환 환자에 대한 인식은 저자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올리버 색스처럼 옥스퍼드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의사가 된 것은 마수드 후사인도 마찬가지지만, 백인이었던 올리버 색스와는 달리 마수드 후사인은 유색인종에 속한다.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와서 늘 외부인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경험해왔다. 그런 까닭으로 그는 뇌신경질환 환자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로 그런 시각이 묻어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바로 개인적 정체성이자 바로 사회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이를 이해하는 것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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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드 후세인은 지금은 옥스퍼드대학의 교수이면서, 저명한 과학저널 <Brain>의 편집장일 정도로 이 분야에서 분명하게 성공한 이가 되었지만, 이런 아웃사이더라는 인식은 자신은 물론 자신이 다루는 환자에게도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맨 앞서 얘기한 대로 7명의 신경학적 장애를 가진 환자를 다루고 있다. 이들에 대해 마수드 후세인은 어떤 이는 약물로 치료하거나 증세를 약화시킬 수 있었지만, 어떤 이는 치료할 수 없었다. 증세를 약화시키는 경우도, 근본적인 치료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이긴 하다. 사실 그래서 무력감이 들 수밖에 없다. 어떤 원인이 그런 증세를 가져오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현재의 뇌신경과학, 뇌과학의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그토록 뛰어난 많은 이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음에도 이렇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분야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착시에 시달리는 와히드가 ‘광증’이 아닌가 걱정하면 정신병원에 끌려가 사회와 가족과 떨어져 고립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데, 그것이 뇌의 어떤 문제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 그리고 약물로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팔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애나의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오해에 시달리며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원인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근본적인 치료 방법을 만들어내지 못한 뇌신경과학자들을 무시하고, 비아냥거릴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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