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 엘리슨, 《착한 소녀의 거짓말》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생각이 났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니 버스타고 외치는 스포일러에게 당하지 않았으므로, 친구들도 이 영화를 미리 보지 못했었으므로 나는 이 영화의 반전을 마음껏 즐겼었다. 지금까지도 가장 인상 깊은 반전을 보여주는 영화로 기억한다. J. T. 엘리슨의 《착한 소녀의 거짓말》의 결말을 읽으며 그 영화가 떠올랐다.
“180센티미터에 윤기 흐르는 피부, 하나로 묶은 금발, 무릎께가 찢어진 검정색 스키니진에 녹색과 흰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칼라일은 흰색 아디다스 스탠스미스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애쉬 칼라일의 첫 모습은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진다.
“애쉬는 완벽한 미소를 구현했다. 연습의 결과다. 브로드 가에 있는 아파트의 우중충한 욕실에 서서 거울을 보며 치아가 드러나도록 수없이 입술을 좌우로 당겼다.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눈빛이 반짝이며 볼에 깊은 보조개가 생길 때까지 눈이 부시게 희고 고른 치아가 드러나는 미소에 연회색이 감도는 파란 눈동자, 천연의 금발 머리는 치명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작가도 애쉬 칼라일이 그냥 불쌍한 소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거라 충분히 예상하고, 미리부터 알려줬다. 조금만 세심히 읽었다면 당연히 알아차렸어야 한다. 하지만, 좀처럼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서는 최대한 뒤로 밀면서 극적인 효과를 노린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반전이 일어나며 전말이 밝혀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난다.
그런데 다 읽고도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애쉬 칼라일의 마지막 고백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연이은 살인 사건은 어디까지가 애슐 리가 저지른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애쉬가 저지를 것일까? 몇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애쉬의 고백을 모두 믿고 모든 살인은 애슐리의 짓일 수 있다. 애쉬가 저지른 범죄는 구드학교에 불을 지른 것뿐일 수 있다. 아니면 모든 것이 애쉬의 짓일 수 있다. 애슐리 부모의 죽음에서부터, 신분을 바꾸자는 아이디어도, 구드 학교 학생들의 모든 죽음이. 아니면 애슐리 부모를 살해한 것은 애슐리이고, 그 이후 어느 시점부터 애쉬의 짓일 수도 있다. 작가는 그것을 분명히 정리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모호하게 처리했다. 물론 애쉬의 사이코패스적 본성을 나타낸 맨 앞의 묘사를 읽으면 답은 대충 나오지만 말이다.
참고로 이 소설에 ‘착한 소녀’는 한 명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