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밀, 《열하일기 첫걸음》
1780년. 연암 박지원은 나이 마흔 넷에 청나라로 파견되는 사행단의 정사로 임명된 팔촌 형 박명원을 따라 난생 처음 청나라를 여행한다. 청나라 건륭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떠났던 사행단은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연암은 연경까지 쫓아가게 되었다. 연암은 그곳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바를 썼고, 그것은 조선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가 되었다.
《열하일기》를 읽어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게 꽤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읽지 못하고 있는 건, 여러 핑계를 대봤자 결국은 게을러서다. 마음을 먹고 손에 들게 되면 읽게 될 터인데,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먼저 집어 든 게 바로 이 《열하일기 첫걸음》이다. 연암의 전공한 박수밀이 ‘열하일기 읽기 모임’을 진행한 결과라고 한다. 그러니 일반 독자들이 열하일기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봐야할 지를 잘 정리해주리라 기대했다. 그 기대대로, 그리고 박수밀의 기대대로 열하일기를 읽을 자신이 생겼다.
박수밀은 열하일기를 모험 서사의 관점에서, 우언문학의 관점에서 읽기를 권하고 있다. 모험 서사의 관점이라는 얘기는 열하라는 조선인이 최초로 다가가는 공간으로서 모험의 의미, 또 성리학의 나라에서 그와 반대되는 견해를 피력하는 의미에서 모험적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우언문학의 관점이라는 얘기는 <호질>과 같은 우화(寓話)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자신이 살아가는 나라, 세계에 대한 비판을 에둘러서 한다는 의미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도 담았지만, 때로는 소설의 형식으로(그것도 베끼거나 남에게서 들었다는 전제를 깔고서), 때로는 중국인들과의 필담을 통해서 중국인들의 입으로, 때로는 담담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조선에 대해, 지식인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요약하기에는 이 책은 《열하일기》에서 연암 박지원이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를 상당히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열하일기》의 형식과 내용이 과연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무척 소상하게 짐작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만을 읽어놓고는 《열하일기》를 읽었다고 해도 상관 없겠다는 생각도 들 만하다(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생각난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 나는 아직 《열하일기》를 읽지 않았음을.
이 ‘첫걸음’을 통해서 《열하일기》가 무엇을 담은 책인지,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읽고 생각해야 하는지를 감을 잡았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박수밀이라는 하는 한 명의 《열하일기》 독자의 관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만, 그래서 다른 관점에서 《열하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내가 디딜 디딤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마음이 놓인다.
이제 《열하일기》를 읽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