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를 위한 충실, 헌신, 사랑

한스 라위턴, 《빈센트를 위해》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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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반 고흐 봉어르’. ‘반 고흐’라는 중간 이름이 익숙한 만큼 이 이름은 낯설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가 가장 사랑했던 동생, 그를 아낌없이 지원하고 고무했던 동생 테오의 아내다. 빈센트를 지금의 명성을 있게 한 가장 큰 공로자 중 한 사람이다. 빈센트가 죽고, 건강이 좋지 못하던 테오도 죽은 후 빈센트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고 퍼뜨리는 역할을 한 이가 바로 요다. 빈센트와 테오, 형제 사이에 오간 편지를 엮어서 책으로 출간하여 알린 이도 바로 요다. 어쩌면 요 반 고흐 봉어르가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빈센트 반 고흐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를 ‘빛의 화가’로 반드는 이가 그녀였다.


몇 년 전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 반드시 가봐야 한다고 했던 데가 몇 군데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반고흐미술관이다. 그곳에서 한나절을 지내며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또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살아 있을 때 단 한 점만 팔지 못했던(물론 조금인 인정받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반 고흐가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된 데는 동생 테오의 아내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은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어떤 이인지, 또 어떤 과정을 통해서 반 고흐를 그 위치까지 끌어올렸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반고흐미술관의 수석연구원 한스 라위턴은 반 고흐 형제 사이의 편지는 물론, 요의 일기, 그리고 그밖의 기록들을 끈질기게 파헤쳐 이렇게 요의 전기를 썼다. 이 전기에서 요 반 고흐 봉어르는 단지 빈센트 반 고흐를 유명하게 만든 이일뿐 아니라 19세기 말, 20세기 초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아간 인물이 되어 우리 곁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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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빈센트’는 물론 빈센트 반 고흐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테오와 요의 아들 이름도 빈센트였다. 요는 결혼하고 1년 반만에 형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간 테오가 남긴 자식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후 그녀의 삶은 두 명의 빈센트를 위한 삶이었다. 제목의 빈센트는 그 두 명의 빈센트를 의미하는 것이다. 요는 두 명의 빈센트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규정했고, 또 거기에 헌신하면서도 시대를 선도해나가는 여성으로 삶을 살았다.


물론 요는 어쩌다 빈센트의 그림을 떠안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미술에 대한 조예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어려서부터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어를 공부해서 학교 선생님으로, 번역가로 활동하였고, 훌륭한 번역 솜씨는 이후에도 계속 발휘되어 반 고흐 형제의 편지를 여러 언어로 출판될 때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요는 사회민주주의자였고, 또 여성주의의 선구자였다. 그냥 사회민주주의적인 성향, 생각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사회민주당의 당원으로서 활동했고, 단체의 활동을 위해서 기꺼이 반 고흐의 그림을 내놓기도 했다. 여성으로서의 권리, 특히 참정권을 얻기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서서 단체를 조직하고, 글을 쓰고, 시위에 나서기도 한 행동하는 여성이었다. 이런 면모는 정말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요가 반 고흐의 그림을 알리는 방식은 끊임없는 전시회 등을 통한 홍보였다. 놀라운 것은, 물론 뛰어난 화상(畫商)이었던 테오를 곁에서 잠시나마 지켜봤었겠지만, 거의 문외한이던 분야에서 조금씩 이쪽 생리를 터득하고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림 중개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꿋꿋하게 지킬 것은 지키면서 그림을 대여하고, 팔면서 반 고흐의 그림의 가치를 알렸던 것이다. 숱한 전시회에 응하고, 기획하면서 고단했지만 꼼꼼히 반 고흐의 작품을 처리하면서 요는 하나의 임무를 완수해나가고 있었다.


반 고흐의 명성이 올라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빈센트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출판한 것이었다. 반 고흐의 집안에서는 이를 반대한 이도 있었다 한다. 내밀한 내용까지 그렇게 세상에 밝혀서 좋을 것이 뭐 있겠냐는 것이었을 게다. 특히 좋지 못한 소문을 가지고 죽은 빈센트와 오랫동안 병약했던 테오의 죽음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요는 불굴의 의지로 형제의 편지를 출판해낸다. 그건 그냥 단순한 출판이 아니었다. 모든 편지를 날짜별로 정리해야 했으며(빈센트는 편지에 날짜를 쓰지 않았다 한다), 또 휘갈겨 쓴 내용을 다시 옮겨 적어야 했다. 그래서 십수 년에 걸친 작업 끝에서야 겨우 출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냥 수입만을 보고 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요는 빈센트 반 고흐를, 그의 그림을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반 고흐가 그림이 그런 가치를 지닌 것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알아본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알아볼 사람을 찾고, 또 알려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반 고흐는 테오의 결혼을 축하하고, 조카 빈센트의 탄생을 정말로 기뻐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인 <아몬드>가 바로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리고 선물한 것이다). 그가 그때 이런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요의 일대기를 그린 이 책은 본문만 해도 500쪽이 넘고, 주석도 거의 책 한 권 분량이다. 그만큼 공을 들인 책이다. 어디서 누구의 도움으로 전시회를 열고, 몇 점을 얼마에 팔고 등등의 얘기는 조금 지루할 수 있지만,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너머의 것을 읽으면서 꽤 흥미로운 부분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다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반 고흐의 현대성에 대해 자부심과 자신을 가져다는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요 스스로 그림에 대해 자세한 평가를 내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그녀가 자신의 평생의 임무로 삼았던 그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무척이나 궁금하다.


요는 재혼(요한 코혼 호스할크)을 했고, 테오보다 훨씬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지속했지만 그녀가 선택한 이름은 요 반 고흐 봉어르였다. 반 고흐의 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끝까지 인식했다는 얘기다. 그녀의 묘지에 놓은 출판사 WB의 화환 리본에는 세 단어가 적혀 있다고 한다. ‘충실, 헌신, 사랑“. 3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두 명의 빈센트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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