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런드 앨런, 《쓰는 인간》
나도 말하자면 ‘쓰는 인간’이다. 벌써 20년째 쓰고 있는 ‘플래너’가 그 증거랄 수 있다. 대학원생들과 랩미팅을 하면 학생들은 아이패드 등에 기록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종이에 쓴다. 그리고 매년 모아둔다. 이제 상자가 차고 있다. 왜 쓸까? 어쩌면 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색하고, 뭔가 부족할 것 같은 느낌. 뚜렷한 효용성을 갖다 대지는 못하지만, 가끔은(실제로는 자주) 활용하게 되는 용도.
작가, 출판인, 종이 문화사 전문가(이 마지막 타이틀이 이 책에 가장 어울린다() 롤런더 앨런이 그런 ‘종이에 쓰기’의 역사를 펼처 놓았다. 부제 ‘종이에 기록한 사유와 창조의 역사’는 이 책의 깊이는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을지언정 재미와 풍부함을 다 담지 못한다. 그저 연대기처럼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인류가 종이에 무언가를 기록하면서 창조적 활동을 해왔고, 우리는 그걸 통해서 그 때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는, 대충 예상할 수 있는 흐름의 책이 아니란 얘기다.
물론 흐름은 있다. 전체적으로 과거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노트(notebook)’의 역사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가 서로 고리처럼 한 줄로 이어지는 식이 아니라 그물처럼 서로 엇물리고 있다. 과거에 쓰였던 기록의 형태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것인데, 애런은 그걸 잘 포착해내고 있고, 또 잘 그려내고 있다.
역사 속에 참 다양한 기록, 노트의 역사가 있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발명된 장부는 물론, 회화의 역사를 바꾼 스케치북, 치발도네, 베네치아 선원이 자신의 이력을 드러내기 위해 작성한 미카엘의 서, 악보, 비망록, 마젤란 항해의 해양일지, 물고기와 물고기잡이를 정교하게 그려낸 네덜란드의 피시북, 여럿이 하나의 노트를 가지고 교대로 써간 우정노트, 이탈리아의 산업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적어낸 산업 관찰기, 여행자들의 일기, 파멸의 계기가 된 푸케의 노트, 쓰고 지울 수 있게 만들었던 테이블 북, 5년 간의 항해에 잠시도 놓지 않았던 찰스 다윈의 노트, 경찰수첩,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한 노트, 레시피북, 주의력 결핍을 극복하고자 고안했다 대히트작이 된 불렛 저널링, 그리고 중환자실의 환자가 의식을 잃었을 때를 간호사들과 가족들이 기록한 환자일기 등등.
이 기록들의 주인공들은 정말로 유명한 사람들도 많다.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에라스뮈스, 프랜시스 베이컨, 마크 트웨인, 피프스, 린나이우스(린네), 애거사 크리스티 등등. 하지만 그런 보편적으로 유명한 인물들 말고도, 그 분야에서 알만한 사람은 아는 그런 인물들도 많고, 또 완전히 무명인 인물들, 그 기록 말고도 다른 데서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 혹은 누가 작성한 것인지도 모르는 기록들도 있다. 그런 기록들은 어떤 경우에는 그 기록을 바탕으로 위대한 이론, 혹은 저작물이 되기도 하고, 그 기록 자체를 엮어서 하나의 책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기록물로 잊히다 발굴되어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도 있다. 물론 아직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발굴되지 않은 소중한 기록도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테지만,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귀중한 기록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기록의 역사, 노트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
저자는 “디지털 도구가 더 저렴해지고, 더 번지르르해지고, 각종 기능이 더 풍성해지는 바로 그 순간에도 우리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종이 노트에 의지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쓰고 있다. 디지털 도구가 아니라 종이 노트가 오히려 제약 없는 지평을 열어주고, 창조하고, 탐구하고, 기록하고, 분석하고, 생각하는 도구로서 더욱 유용하고 효과적인 도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충분히 사용하라. 그러면 노트가 뇌를 바꿀 것이다.”
이것은 이 책 전체의 모든 예에서 입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