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스킨인더게임》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가 쓴 ’불확실성(incerto)‘을 의미하는 《인세르토》 시리즈의 마지막 저서다. 제목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이란, 자신이 시간이든 돈이든, 노동이든 투자한 데 따른 위험을 감수한다는 의미, 즉, 자신의 위험을 감수한 행동에 대한 영어 숙어다. 이 책의 용어를 따르면 선택과 책임이 일치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이 책은 바로 그 선택과 책임의 불균형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블랙 스완》, 《안티프래질》에서도 봤지만 나심 탈레브는 거침없다. 어떤 독자들은 불유쾌하게 읽을 만한 대목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또 그런 거침없음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환호한다. 개인적으로도 이건 아니지 싶다가도 통찰이라고 여겨지는 대목이 많고, 또 빠져들어 읽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 이 사람의 의견을 그대로 통째로 받아들여서는 위험하다 싶어지기도 한다.
내용의 핵심은 앞서 얘기한 ‘선택과 책임’에 관한 것인데, 자주 언급하는 용어만 보고도 이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도 있다.
첫 번째는 밥 루빈 트레이드(Bob Rubin Trade)다. 밥(로버트) 루빈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 재무장관을 역심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나심 탈레브가 만든 이 용어는 주로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 집단이 책임은 남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이익만 취하는 거래를 의미한다. 행정 관료 출신의 이런 행태는 여러 인물에서 볼 수 있을텐데 굳이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장관의 이름을 붙인 것은, 그의 행태가 대표적이기도 했겠지만, 그의 정치적 성향도 한몫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 밥 루빈 트레이드가 바로 대리인 문제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는데, 대리인과 실제 주인 사이에 이익이 상충되거나 불합리하게 분배되는 문제를 의미한다. 이는 대체로 정보의 불균형에 따른 경우가 많다.
간섭주의자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면서 비판한다. 어떤 상황에서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참여하지도 않고 책임도 없으면서 해당 상황에 대해 (불필요하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언을 내놓는 사람들을 간섭주의자라고 지칭하고 있다. 특히 특히 국제관계에서 간섭주의자는 평화가 아니라 갈등의 원인이 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과학주의 또는 과학만능주의(Scientism)라는 용어도 쓰고 있는데, 이는 과학과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과학주의는 과학을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하기 위한 도구로서만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과학자가 아니다.
린디 효과(Lindy effect)란, 지금까지 존속해온 기간이 길면 그만큼 앞으로도 존속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경험적 원리를 설명한다. 특히 기술의 경우 오래된 기술일수록 앞으로도 오랫동안 활용될 것이다. 나심 탈레브는 자신의 책을 예로 들기도 하고 있다.
왜 양보하지 않는 소수가 주도하는 사회가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소수에 의한 정의(Minority rule)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극단적인 소수와 너그러운 다수가 있을 때 기준이 소수에 맞춰진다. 예를 들어, 나는 육식도 하고 채식도 하는데, 다른 사람이 육식은 하지 않는다면, 둘이 식사를 할 때 채식을 선택하게 된다. 언어도, 윤리도, 종교도, 그리고 정치도 이 원리 때문에 소수가 사회를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에고르드 상태(Ergodicity)란 용어가 있는데 나심 탈레브는 이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단 한 차례도 명확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물론 내용은 여러 차례 설명한다). 에고르드 상태란, 어떤 시스템이 시간에 따라 변화할 때 충분히 긴 시간 관찰한 평균값과 동일한 시점에서 전체 시스템을 동시에 관찰한 평균값이 같아지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100년 동안 측정한 서울의 평균 온도와 100명의 사람이 같은 시간에 서울의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측정한 평균 온도가 같을 때 이를 에르고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심 탈레브는 금융투자자이므로 경제학에서 다시 얘기하자면, 투자자의 수익률이 시간에 따라 어떤 특정한 값으로 수렴하는지를 분석할 때 쓰인다. 즉, 장기적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단기적으로 계속해서 이익을 보는 것과는 다른데, 즉, 많은 금융 모델이 에르고드 상태에 있지 않은 것이다. 전체의 평균과 개인의 평균이 다르다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나심 탈레브는 이 책에서 책임의 윤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현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논문이나 써대는 대학 교수(이를테면, 스티븐 핑커, 폴 크루그먼)를 비롯한 지식인을 불신하고, 행정 관료를 비판한다. 이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대신 현실 경제에서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면서 단련한 사람을 ‘믿는다’. 그래서 대기업 옹호자인 힐러리 클린턴 대신에 트럼프(”리스크를 감수한 실존적 인물이라는 점이 신뢰의 기반”)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