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사람이 벌레라니》
이준호 교수의 《사람이 벌레라니:》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생명과학, 혹은 생명과학 교양서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것을 느낀다.
유명한 과학자의 삶과 연구에 대한 회고록은 꽤 있어 왔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런 책의 대상은 일반 독자라기 보다는 그 과학자를 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가 읽기엔 그랬단 얘기다. 그런데 이 책 이준호 교수의 《사람이 벌레라니:》는 확실하게 일반 독자, 그것도 고등학생, 대학생을 대상으로 쓴 자신의 연구를 되돌아보고 있다.
사실 위의 표현을 여러번 썼다 고쳤는데, 달리 쓸 말이 없어 ‘회고’니 ‘되돌아보고’ 같은 말을 썼다. 실은 예쁜꼬마선충이라고 불리 C. elegans에 관한 아주 훌륭한 교양 개론서인데, 그걸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했다. 이렇게 한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 경험을 대중에 대한 과학 교양과 연결짓는 경우가 이 책 하나만 있는 게 아니란 점에서 우리나라 생명과학 교양서의 수준이 올라서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수준 높은 과학자들이 있고, 그런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이준호 교수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짧은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국내에 교수로 임용되어 들어와 국내 거의 최초로 예쁜꼬마선충연구실을 차린 지 30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30년 동안(정확히는 박사 과정때부터) 예쁜꼬마선충에 대한 연구 결과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떻게 이 작은 벌레가 연구의 대상이 되었는지(전적으로 시드니 브레너의 공이다. 그래서 이쪽 연구자들의 계통은 다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예쁜꼬마선충인지, 그 성과는 어땠는지 등등 이 벌레를 연구만 하면 뭔가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들게 써놓았다(물론 꼭 그럴 수만은 없는 것이 연구다).
물론 RNA 간섭이나 텔로머레이즈, 마이크로RNA 등 예쁜꼬마선충을 대상으로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은 연구에 관한 얘기도 재밌고, 이준호 교수의 재기 발랄하고, 끈기 있는 연구 얘기도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나는 가장 재미있고,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며 읽은 것은 하다 만 연구들, 실패한 연구들에 관한 얘기들, 그리고 앞으로 했으면 하는 연구들을 제안하는 얘기들을 모아놓은 부분이다.
그런 부분들을 그는 ‘무모한 연구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실패하고, 혹은 더 진행하지 못하고, 또 아직 아이디어에만 남아 있는 연구들이다. 이제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연구들이기도 하다. 그런 연구들을 소개하면서 다른 연구자들이 도전했으면 바라고, 또 그런 의사를 밝히면 기끼어 돕고자 하는 것이다. 무릇 연구자라면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의 연구가 나만 홀로 간직해야 하는, 어떤 독점적인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나누고, 또 나의 대를 넘어서서 의미 있는 연구는 이어지도록 독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길게 쓰지 않았다. 그래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접근하기에는 딱 좋다. 이 정도면 사람들이 예쁜꼬마선충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어떤 연구들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