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J. 미첼, 《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
우생학(Eugenics)의 창시자 골턴이 ‘본성이냐 양육이냐(Nature vs. nuture)“이란 말을 만든 이래 인간의 특성이 타고 나는 것인지, 환경에 영향을 받는지에 관한 논쟁은 오래되었고, 격렬하기도 했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첨예한 대립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 생명과학은 이 문제에 어떤 답변을 내놓고 있을까?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의 신경유전학자 케빈 J. 미첼의 《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는 이 답변 중 아주 유력한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Innate“다. 말하자면 ”타고 난“, ’선천적인”의 뜻을 갖는 단어다. 이런 제목에서부터 케빈 J. 미첼의 입장은 대충 짐작할 만하다. 그는 인간의 특징 중 상당한 부분이 ‘유전’에 의존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는 유전자 결정주의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유전자가 인간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능성을 유전자가 지니고 있으며, 혹은 유전성이 있으며, 이것이 발현되어 나가는 것이 인간 삶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가장 오해를 받으면서도, 가장 기초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개념이 바로 ‘유전력’이다. 특정 형질, 예를 들어 키의 유전력이 50%라고 한다는 의미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키라는 형질의 50%가 유전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아니다(많이들 이렇게 생각한다). 즉, 키의 60%가 유전적 요인이 있다는 게 아니라 집단에서 이 키라는 형질의 분산, 즉 평균값에서의 편차 가운데 50%가 유전적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어떤 형질이 유전자에 의한 것인지가 아니라 차이나는 것에 유전자가 얼마나 기여하느냐는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유전력을 측정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실험은 거의 불가능하다. 특정한 형질의 복제인간 100명을 만들어 그 형질을 그대로 보유하는지를 조사하면 될 일이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대신 자연적인 복제인간이 있고, 그 대조군이 존재한다. 일란성, 이란성 쌍둥이와 입양 형제다. 일란성 쌍둥이에서 특정 형질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유전적인 연관성이 별로 없는 이가 같은 가정 환경에서 자랐을 때는 어떠한지를 보는 것이다. 이런 연구를 통해서 많은 형질의 유전력이 측정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와 더불어 다양한 뇌 발달에 대한 연구, 신경학 연구 등을 통하여 과학자들은 많은 형질들, 예를 들어, 지능, 행동, 남녀의 차이 및 성적 선호, 신경 정신 질환 등등이 어느 정도나 유전에 좌우되는지, 또는 어느 정도나 환경에 좌우되는지를 조사해왔다. 거의 결론은 비슷하다. 많은 형질들이 환경보다는 유전에 좌우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얘기한 대로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면 그 사람의 운명이 정해진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달리 태어나는 것이(일란성 쌍둥이를 포함하여) 유전자가 특정 형질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이 어떤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은 개인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유전에 좌우된다는 것은 그 프로그램으로 어떤 특성을 가지게 되었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일 뿐이다. 즉, 발달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유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이 책은 사실 다양성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유전자 때문에 얼마나 다양하게 태어나는지를 얘기하고, 그 다양성이야말로 인간의 적응 형질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런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때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타고 난다. 타고 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책이 얘기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