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우주를 위하여

최은정,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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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지난 주 11월 27일 오전 1시 13분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했다. 2021년 10월의 첫 발사 때만큼의 벅찬 느낌은 없었다. 보도량도 줄었고, 국민적 관심도도 줄어들었다. 어쩌면 이제는 이 정도는...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도 진짜 우주 시대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내딛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를 위해 2024년 우주항공청을 발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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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둘.

2022년 국제우주대회(International Astronautical Congress, IAC)의 구호는 “모두를 위한 우주(Space for all)”이었다. 우주가 어느 한 국가, 한 기관, 한 기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또 진취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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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시대다.

이에 발맞춰 우주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기존의 우주의 신비와 같은 과학적 발견 등에 덧붙여 왜 우주로 나가야 하는지(https://blog.naver.com/kwansooko/222877052373), 우주를 두고 벌이는 세계 각국의 각축(팀 마샬의 《지리의 힘 3》이 대표적이다. https://blog.naver.com/kwansooko/223866065271) 등을 다룬 책들이다. 거기에 우주생물학(https://blog.naver.com/kwansooko/223917462067)이나 우주여행(https://blog.naver.com/kwansooko/223311379711), 외계 생명(https://blog.naver.com/kwansooko/224083075414) 같은 새로이 개척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책도 있다. 내가 읽은 대표적인 책만 뒤져봐도 그렇다. 지금 우리는 지상에 발붙이고 살아갈 운명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우리의 뒷세대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헨리 지 같은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종(種)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주로 나가야 하고, 200년 안에 결판이 나야 한다고까지 하지 않았나(《인간 제국 쇠망사》, https://blog.naver.com/kwansooko/224085880570).


그런 책들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은 얘기가 있다. 바로 우주 개발의 질서에 관한 얘기.

우주로 나가는 데 각국은, 각 기업은 어떤 규칙 속에서 행동하고, 어떤 제약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사실은 몇몇 국가에 한정된 얘기긴 하지만) 우주로 나가긴 하는데, 거기에 따르는 문제점은 없는지. 그리고 2022년 국제우주대회에서 천명했던 대로 “모두를 위한 우주”는 가능한 것인지, 혹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등.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 센터장 최은정 박사가 쓴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는 바로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우주위험감시‘란 말부터 의미심장하다. 우주, 위험, 감시라는 단어 하나하나는 보통명사이지만 이 단어들이 결합시켜 보니 무시무시한 느낌이다. 우주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그리고 그 위험은 어떻게 감시하는지, 나아가 그 위험이 현실화되었을 때 지구는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우주는 드넓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용할 수 있는 우주는 좁다. 거의 포화가 되어가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같은 일개 기업이 쏘아 올린 위성만 해도 수천 기에 달한다는 것만 봐도, 저 하늘에 얼마나 많은 우주선, 인공위성들이 들어차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쏘아 올릴 때, 우주에서 가동할 때, 그리고 임무를 마치고 폐기처분될 때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우주는 그저 빈 곳이 아니라 아주아주 제한되어 있고, 그래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경쟁만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모두를 위한 우주”에 대한 얘기도 해야 한다. 제목에서 보듯이 저자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우주 개발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가장 심한 분야 중 하나다. 초기의 기술 격차를 메우기가 매우 매우 힘든 분야다. 점점 더 우주는 특정 국가, 특정 기업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제목처럼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가 맞는 말일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처지는 위기이면서 기회라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중국 등에 기술력이나 외교력 등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우주라는 무궁한 기회를 놓칠 수 있지만, 잘 활용하고 투자를 하면 커다란 기회를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우주”라는 대의 속에서 그 ’모두‘에 우리도 당당히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최은정 박사는 “우주 대항해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유럽이 아메리카로, 아시아로 진출한 대항해 시대 이래로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우주군이 편성되고 있는 것만 봐도 우주 대항해 시대는 그저 평화로운 경쟁의 시대가 아니란 게 확실하다. 다시 시대의 흐름에 뒤처져 멀뚱히 바라보며 궁색한 처지가 될 것인지, 당당한 주역이 될 것인지는 바로 지금 우리의 투자와 노력에 달려 있다. 거기에 더해 그런 우주를 향한 경쟁이 피가 튀기고 공멸을 향한 발걸음이 될지, 아니면 지구인 모두를 위한 위대한 발걸음이 될지 역시 우리가 치열한 토론를 통해 지혜를 모아야 하는 과제다.


이 책은 그런 질문과 과제를 던지고 있다.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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