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보통 과학자》
딱 2년 됐다.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을 내고 처음으로 라디오엘 출연했더랬다. ‘EBS 윤고은의 북카페’의 목요 초대석. 그때 이 책을 어떻게 쓰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내가 잊혀질 과학자라서”라고 답했었다(보이는 라디오라서 방송 장면은 유튜브에 올라와 있지만, 어떤지 앞부분은 잘려있어 그 부분은 나오질 않는다).
나는 그 책을 쓰면서 종종 플레밍에 대해 쓰지 않는 항생제 발견 얘기를 쓴다고 했었다. 실제로 플레밍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플레밍과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플로리와 체인도 한 챕터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대신 그들과 함께 연구했지만 노벨상을 받지 못한 히틀리에 대해 썼고, 에를리히 대신 베르트하임과 하타, 도마크 대신 클라러, 미치에 대해 썼다.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의 역할에 대해 쓰고 싶었고, 그들을 기억 속에 조금이라도 오래 남겨두고 싶었다.
김우재의 《보통 과학자》 출간 소식을 듣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에서 영웅 서사는 전혀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은 영웅 한 명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나 같은 평범하고, 잊혀질 과학자(애초에 기억되지도 않을?)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는 것, 아니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평범한, 보통의 과학자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과학에 관한 보편적 발전에 관한 건강한 인식을 알리려고 한다고.
맞다. 그런 책이다.
니덤의 조수이자 스승이었던 루구이전, 사람 염색체의 개수를 처음으로 제대로 센 조 힌 치오, 제임스 와트와 함께 증기기관 개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돈만 댄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 매슈 볼턴, 보일의 실험실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냈지만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보이지 않는 기술자들’, 크리스퍼-카스 시스템 발견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덴마크 요거트 회사의 연구자들.
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2부).
그리고 수많은 비정규직 과학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들이 왜 과학을 떠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과학자 사회의 불평등, 부조리, 불합리를 이야기한다. 불평등과 부조리, 불합리는 보통 과학자를 옥죄고, 과학을 포기하도록 한다. 결국 보통 과학자가 행복하게 연구하는 사회가 되어야 진짜 과학이 제 궤도에서 옳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부자가 되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그런 이도 없지는 않겠지만), 즐겁게, 보람을 느끼며 과학을 하고 싶어한다. 그게 보통 과학자다.
보통 과학자 김우재가 비판을 넘어 비난하는 것들은 과학자라면 거의 누구나 인식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왜 그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지 않는 것일까? 왜 이런 책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왜 연구비는 계속 더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왜 비정규직 연구자들은 늘어가기만 하고, 과학을 포기하는 과학자는 늘어가기만 하는가? 김우재는 그것을 과학자들의 비합리성, 혹은 비겁함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가장 합리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그 범위만 벗어나면 가장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집단이 과학자 집단이 아닌가 비판하고 있고, 특히 이미 교수가 되고, 정규직 과학자가 되어 약간의 기득권을 가진 선배 과학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합리와 모순을 인식하면서도 이것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비판하고 있다.
그는 소리 높여 외친다. 과학자들이 나서서 불합리한 평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문제를 직시하고,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누군가는 시도해온 일이라 그것에 대한 동의만 이루어져도 여러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고. 그게 보통 과학자들이 행복하게 연구에 몰두하고, 그래서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부끄러운 부분도 있었다. 아니 내내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동의하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정규직 과학자가 여기 한 명 더 있었다. 불편한 대목일수록 내게는 바늘이고 창이었다.
* 이렇게 이 책을 칭찬(?)했으니 몇 가지 ‘작은’ 아쉬운 부분을 지적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남겨본다.
첫째는 ‘보통 과학자’가 어떤 과학자인지에 대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느낌상 알겠지만, 어디에서 어디부터가 보통 과학자인지 애매하다. 애매해도 괜찮지만, 언급하는 대목마다 조금씩 달리 쓰이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갸웃거릴 때가 있었다.
둘째는, 몇몇 글이 이미 몇 년 전에 썼던 것을 묶어서 내고 있어 지금과 맞지 않는 것들이 있다. ‘3책 5공’을 몇 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든지 하는 것들을 비롯해서. 물론 글의 취지를 별로 훼손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고쳐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인용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는 2020년대의 것들은 거의 없다는 것도 조금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도 과학자라면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읽지 못하더라도 생각은 해봤으면 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과학자가 되려는 학생들에게는? 글쎄... 과학계의 치부를 이렇게 낱낱이 드러내는 책을 권해도 될까 망설여진다. 그러나 모르고 들어오는 것보다 알면서 들어오는 이들이 오래 갈 거다. 그들이 뭔가를 바꿔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