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로치, 《자연이 법을 어길 때》
I.
Stiff, Bonk, Spook, Gulp, Grunt. 메리 로치가 쓴 책들의 원래 제목들이다. 어떤 책들은 그냥 ‘봉크’, ‘스푸크’라는 우리말 제목으로 번역되었지만, 이대로는 우리나라 독자들은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제목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체로는 그럴듯한, 그러니까 내용을 반영하는 제목으로 바뀌어 번역되었다. 다 영어에 있는 단어지만, 점잖은 책에는 잘 쓰지 않는 단어들, 그러나 영어권 독자들은 금세 알아먹을 단어 하나로 책 제목을 쓰는 게 메리 로치의 특기다.
이번 책의 원제는 <Fuzz>다. 원제만을 가지고 내용을 파악하겠다고 한다면 가장 고난이도의 제목이 될 터이다. 사전으로는 이 단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1. (특히 사람의 얼굴이나 팔에 난) 솜털
2. 곱슬곱슬한 털
3. 경찰, 짭새
물론 이 책은 ‘털’에 관한 내용은 아니다(경찰, 즉 짭새에 관한 책은 더더욱 아니다). 털은 많이 등장한다. (거의) 동물에 관한 얘기이니, 동물의 상징이랄 수 있는 ‘털’을 제목으로 삼은 것일까? 그렇다면 새는? 그런 의문은 든다. 그러나 대충 느낌은 온다. 물론 본문을 읽어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느낌이다. (이 책의 우리말 제목은 원서의 부제에서 가져온 것이다.)
II.
이 책을 읽자마자 우리나라 독자들은 떠올릴 거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년 전, 2024년 12월 29일 아침의 참사.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하여 단 두 명을 제외하고 179명이 사망한 사건. 이처럼 대형 사고가 벌어진 이유는 로컬라이저가 철제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차적으로는 동체 착륙을 시도할 수밖에 없게 한 조류의 엔진 충돌이 원인이었다.
새들은 세계 어느 공항에서나 골칫거리다.
III.
책의 머리말은 줄리언 반스의 풍자 소설집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동물들에 대한 재판 말이다. 줄리언 반스는 노아의 방주에 몰래 승선한 나무좀은 종교재판의 피고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게 그저 소설의 얘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메리 로치는 여러 문헌에서 발견하고 머리말에 적고 있다. 법을 어긴 동물(자연)들이다.
IV.
배고파 쓰레기통을 뒤지는 곰
육중한 몸으로 집 지붕을 뭉개고, 사람까지 죽게 하는 코끼리
어느샌가 출몰해서 피해를 입히는 표범과 쿠거
재미로 그러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원숭이의 악행
느닷없이 쓰러져 사람을 덮치는 ‘위험 나무’
살인 공범자가 되는 콩
우리나라 항공 사고와 같은 일을 벌이는 조류
무단 횡단하며 죽어가는 사슴을 비롯한 동물들(나라의 사슴 공원이 생각났다), 바티칸 성 바오로 공원의 갈매기
누구나 끔찍해 하지만, 정작 무슨 피해를 주는지 애매한 쥐, 혹은 생쥐
뉴질랜드를 황폐화시킨 토끼, 토끼를 잡기 위해 들여왔지만 날지 못하는 새들을 잡아먹어 멸종 위기로 몰아넣은 북방족제비.
-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들이다. 이른바 ‘유해’ 동물로 낙인찍혀진 동물들이다. 혹 어떤 동물들은 특정 사람들에게 존중받기도 하고, 혹은 귀여움을 받기도 하지만(이를테면 <주토피아>의 주디 홉스.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까봐... 토끼다!), 이들 동물들은 낙인찍혀진 동물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동물들을 죽여야 한다고, 쫓아내야 한다고, 혹은 불임을 통해 퇴출해야 한다고 한다.
V.
메리 로치는 “언어도 문화도 모르는 땅을 돌아다니면서” 번역과 통역을 통해가며 상황을 직접 보고, 질문을 던지고, 공감하거나, 혹은 의문을 제시했다(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으므로).
그저 “색다른 책을 쓸 수 있는 소재”라서?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메리 로치는 평범한 주제도 색다르게 쓰고, 절대 평범하지 않은 주제를 맛깔나게 쓰는 작가이니, 이런 소재는 구미가 당겼을 것이다. 읽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에 이를 심판해야 하는 필요성과 살아 있는 동물을 보호한다는 (현대의) 당위 사이의 곤란함은 어떨까? 그런 아이러니 같은 상황은 글을 쓰는 데 더욱 분발하게 했을까, 아니면 정답이 없는 주제 때문에 조금씩 후회하게 만들었을까?
대부분의 지역과 동물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해결책이라고 제시한 것은 대부분 미봉책이거나 효과를 보지 못한다. 효과가 있더라도 단기간의 효과다(동물도 머리가 있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가 없다. 그런 동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고, 피해는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마구잡이로 그 ‘유해’ 동물의 멸종을 봐야만 한다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래도 우리는 동물 보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메리 로치는 이런 딜레마를 끊임없이 전달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그런 딜레마에 우리를 노출시키는 것이야말로 이 책이 노리는 바다. 그게 일관된 방향성을 지닌 메시지라고도 할 수 있다. 꾸준히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야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어떤 완벽한 해결책이 나올 수는 없지만,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방법을 찾다보면 기가 막힌 해결책이 나오지도 않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운 절충점은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