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킹, 《피렌체 서점 이야기》
그대, 베스파시아노는 고대 세계의 위인들에게
퇴락한 세월이 빼앗아간 생기를 되찾아주었네.
그대 덕분에 그리스인들은 레테의 망각의 물결을 밀어내고
라틴어는 더는 스틱스의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네.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의 시인 폴리치아노(본명 안젤로 암브로지니)가 쓴 “찬란한 시”의 대목이다. 시 앞부분에서는 메디치가와 피렌체의 전성시대를 이끈 ‘위대한 로렌초’를 찬양했고, 다음으로는 바로 베스파시오노를 노래한다.
베스파시아노. 그의 이름은 피렌체 르네상스의 인물들에 대한 책 폴 스트래던의 《피렌체 사람들 이야기》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았다. 로마 황제 이름과 같은 그는 어떤 인물이기에 시인이 이렇게 찬양했을까?
1433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른바 두오모라 일컬어지는)에서 조금 떨어진 서적상 거리(Vai dei Librai), 가장 큰 가게 중 하나였던 과르두치의 가게에 열 한 살 소년이 새로운 조수가 고용된다. 소년은 아버지가 죽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가 바로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Vespasiano da Bisticci)다. 그는 “세계 서적상의 왕(rei de librari del mondo)”가 될 운명이었다.
아직 필사본의 시대였다. 그는 20대가 되기 전에 이미 훌륭한 서적상이 되기 위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 자질은 필사하기 위한 여러 모본(母本) 가운데 적절한 것을 찾아내는 실력과 함께 (필사본을 의뢰하고 구입할 수 있는) 유력한 인사들과 친분을 맺는 친화력을 의미했다. 가게를 인수하고나서는 필경사와 채색사, 제본을 하는 조수 등 여러 인력들을 지휘하는 능력까지 갖추었어야 했다.
책이 필요했던 많은 인문학자들은 물론, 메디치가와 교황, 멀리 나폴리의 왕, 용병대장 들이 베스파시오노를 찾았다. 그는 말하자면 지식의 유통업자였다. 그는 르네상스의 핏줄을 흐르게 하는 역할이었다. 르네상스의 주역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유력한 조연상 후보다. 폴리치아노가 그를 찬양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베스파시아노라고 하는 한 서적상을 중심으로 15세기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의 정치와 사회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책은 아주 중요한 보물로 다루어진다. 실제로 그러했으리라. 책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수백 권이 있으면 어마어마한 책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책을 통해 그가 구축한 네트워크는 권력자들의 갈등 시기에 다른 편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권력자들을 화해하게 하는 데도 이용되었다. 책은 세계를, 사람을 이었다.
그런 이야기다. 책과 서적상을 중심으로 본 르네상스의 한 세기 이야기.
* 르네상스 시기의 서적상이라고 하면 베네치아의 알두스 마누티우스만을 생각했었다(이 책에서는 단 한 차례 이름만 등장한다. 353쪽). 마누티우스는 인쇄술의 시기에 등장한 인쇄업자이자 인문학자였지만, 베스파시아노는 필경의 시대 마지막을 장식한 서적상이란 점에서 다르다.
* 피렌체는 인쇄술을 받아들이는 데 의외로 매우 느렸다. 1475년까지 단 한 명의 인쇄업자도 피렌체에는 없었던 것이다(베네치아는 1476년에 열여덟 개의 인쇄소가 있었다. 로마도 많은 인쇄업자가 활약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로스 킹은 성공의 덫과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 당시 이미 예술, 문학, 기술의 최전선에 있던 피렌체는 문해율도 높았고, 교사들도 많았고, 배움에 대한 욕구를 갖춘 시민들도 많았다. 서점과 문구점도 꽤 됐다. 도서관도 잘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 신기술은 피렌체에 빨리 들어오지 못했다.
로스 킹은 우선 로렌초 데 메디치가 인쇄술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을 이유로 든다. 그는 필사본 형태의 책을 선호했다고 한다(만약 같은 책을 내가 소유하게 된다면 어떤 책을 고를까?) 그리고 또 하나는 명망 있는 대학이 피렌체에는 없었다. 그래서 법학, 의학, 신학과 같은 분야의 (같은) 책이 한꺼번에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는 베스파시아노와 같은 인물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미 뛰어난 서적상이 있어서 필경사를 고용해서 훌륭한 책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부유한) 고객들이 원하는 대로 화려한 책도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저렴한 판본 역시도 많들어냈다. 특히 베스파시아노와 같은 이는 고객들이 원하는 작품을 찾아내는 데 도사였다. 피렌체는 그로 족했던 것이다. 게다가 인쇄술은 초기 자본이 만이 들어가기 때문에 위험한 사업이기도 했다.
물론 1400년대 후반 들면서 상황은 바뀐다. 베스파시아노가 은퇴할 무렵에는 이미 인쇄술의 시대가 되었다.
피렌체 르네상스의 또 다른 축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