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한 결말들

요네자와 호노부, 《덧없는 양들의 축연》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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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단편은 독립적인 작품이고 연작도 아니지만, 공통점이 많다. 일단 모두 ‘바벨의 모임’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바벨의 모임’이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마지막 작품 <덧없는 양들의 축연>뿐이고, 나머지는 스쳐가듯 관계가 있을 뿐이다. 이 모임은 소설들의 등장인물들을 느슨하게 연결하고 있지만, 결국 보면 오히려 매우 강력한 관련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가 환상과 현실의 경계라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여성, 그것도 젊은 여성의 목소리로 쓰였다는 점이다. 거의 모두 대부분 명문가, 혹은 부잣집의 여성과 여성 고용인의 관계가 중심인데(<북관의 죄인>은 예외다. 여기선 명문가의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 고용인과 관계를 맺는다), 시대적으로 어느 때를 염두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현대라고 하기에는 너무 봉건적이고, 그렇다고 너무 과거라고 하기에도 그렇다. 이 관계 자체가 미스터리하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살인 자체가 어떤 장면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대신 살인이 벌어지는 것은 기정사실화되고, 그것이 어떤 과정에서, 어떤 연유에서 벌어졌는지를 독백의 형식으로 보여진다. 살인은 전혀 흥분된 상황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그걸 전하는 목소리도 흥분되어 있지도 않고, 떨리지도 않는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일을 사무적으로 처리한다는 느낌. 그게 더 으스스하다.


2006년에 발표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8년에 번역되었다, 2024년에 다시 번역되어 나왔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은 이렇게 최근에 다시 번역되어 나온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그가 받는 인기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 같다. 그의 작품 몇 개만 봐도 그가 쓰는 미스터리물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작품 역시 그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단편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를 네 번째쯤에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처음에는 맨 마지막이 어떨까 생각했지만, 마지막 작품을 읽고는 그래도 마지막의 단편(<덧없는 양들의 축연>)은 마지막에 있어야 했다.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의 반전이 가장 오싹했다.


* 각 단편의 마지막 문장들이 인상 깊은데(<덧없는 양들의 축연>에서는 일기의 마지막 문장), 이 문장들만 봐서는 모르고 읽으면 이 문장이 왜 끔찍한지를 알 수 있다.

“실은 ……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아마리는 보라색 장갑을 끼고 있네요. 이것도 언젠가 붉게 변하겠지요.” (<북관의 죄인>)

“입막음비랍니다. 이 산장에서 있던 일은 부디 불문에 부쳐주세요.” (<산장비문>)

‘처음에는 약한 불, 중간에는 센 불, 아기가 울어도 뚜껑은 열지 말 것.’ (<다마노 이스즈의 명예>)

“오늘 밤은 입술 찜을 마음껏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덧없는 양들의 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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