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지, 《자연스럽다는 말》
무감각하게, 혹은 의도적으로 쓰는 말이 있다. 자연스럽다는 말.
자연스럽다는 말은, 어떤 현상, 행동 등이 순리를 따른다는 말이고, 그것을 따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까지 내포한다. 그리고 이 말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여겨지거나, 혹은 그렇게 지목된 현상, 행동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 것, 그것을 지키지 못한 것은 잘못된 것이며, 비난받아 마땅하고, 그래서 배격하고 고쳐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논리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과연 자연스럽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연스럽다는 것을 제대로 정의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현상, 행동이 자연스러우냐, 그렇지 않으냐를 따지고, 나아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논박하는 것은 공허한 말싸움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물론 우리는 그런 일을 무수히 벌인다).
그리고 그런 질문, 즉 자연스럽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실 한 가지 질문만을 뜻하지도 않는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자연의 어디까지 봐줘야 하는지, 과연 자연스럽다는 것이 존재하는지, 혹은 자연스럽다는 것은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등등.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도 못한 채 표면적인 문제를 가지고 갑론을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우리는 어떤 자연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진화인류학자 이수지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는 지점은 그런 것들이다(고 생각한다). 대체로는 진화의 관점에서, 때로는 사회학의 관점에서, 혹은 인류학, 여성학, 생물학, 철학 등등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여러모로 뜯어보고 비판한다.
그렇게 동성애의 문제, 인공 피임의 문제, 백신의 문제, 육체 노동의 가치에 관한 문제, 육아 문제, 남녀의 본성을 전제하면서 벌어지는 문제들(이를테면 폭력성, 공감 등), 저출생의 문제 등등을 다룬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문제들이 모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 그러니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미리 정해놓고 판단해버리는 문제, 즉 ‘자연스럽다’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겨우 200쪽 남짓하게 얄푸름한 분량의 책이다. 그런데도 상당히 깊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다룬 논의들이 하나의 관점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이고, 문제 제기라는 점에서 통일성을 지닌다. 다만 출발점이 분명한데 반해 결승점은 그닥 선명하지 않다. 어떤 지점으로 모이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엔 어느 지점에 모여야 할 지는 그 몫을 독자에게 넘겨버린 느낌이다. 물론 독자에게 고민이 몫이 떨어지는 것이야 당연하고, 또 바람직한 일일 수 있지만, 저자의 결승점도 알고 싶다(말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잘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