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역설에 관한 이야기

김병민, 《원소, 끝나지 않은 이야기》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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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에는 원소에 관한 책이 적지 않다. 사실 화학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원소에 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시 원소? 그것도 제목에 ‘원소’라는 말을 박아넣은 책? 한 얘기 또 하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뒤에 붙은 말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여기에 뭔가가 남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읽었다. 실은 ‘원소’에 관해서 적지 않은 책을 읽었어도 잘 모르기도 해서.


10가지 원소를 골랐다. 그런데 순서가 좀 생소하다. 철이 맨 먼저 나오고, 수소가 여섯 번째에야 나온다. 수소 다음으로 작은 원소인 헬륨이 수소와 붙어 나올 것 같은데, 헬륨은 마지막에 등장한다. 무슨 순서일까?


그리고 뭔가 의미심장한 이름의 원소들이 있다. 리튬, 코발트, 네오디뮴 같은 것들. 이 이름들이 다른 원소 이야기보다 많다는 것은 뭔가 저자가 의도하는 방향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얘기다. 그렇다. 김병민 박사는 분명 ‘문명’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은 거다. 우리 현대 문명, 그것도 21세기의 문명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원소들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의 화려한 등장과 역할만을 언급할까? 절대 그렇지는 않을 거란 건 예상할 수 있다. 이 원소들의 등장 이후 과학기술자들의 놀라운 아이디어, 긴 인내는 처음에 생각했던 원소들의 쓰임과는 완전히 다른, 전혀 상상도 못했던 쓸모를 찾아냈다. 그러나... 거기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모든 원소의 이야기마다 시작하는 말이 따로 있다. 이런 식이다.

“철은 별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리튬은 한 방울의 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역설로 시작해 역설로 끝난다.”

“이 이야기는 한 줌의 푸른 돌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한 방울의 바닷물로 시작한다.”

다시 “이 이야기는 한 방울의 물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한 덩어리의 검은 광석으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한 명의 분노한 광부로부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주머니 속 진동으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한 줄기 노란 빛으로 시작한다.”

모든 시작의 얘기를 적어 놓았는데, 이건 무슨 뜻이냐면, 원소들의 시작이 그렇게 창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런 작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현대 문명이 이 원소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건 결국은 과학의 힘이자 업적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 모든 원소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이것들 역시 몇 부분을 언급해보면 이렇다.


“철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역설을 보여준다. 현대 문명을 건설하는 데 필수적이면서도, 그 생산 과정은 환경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이런 모순은 리튬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인간의 감정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만드는 데 사용되는 이중성을 지녔다.”

“지구 표면인 지각에서 가장 흔한 금속을 인류는 약 200년 전까지 단 1g도 얻을 수 없었다는 역설”

“우리는 탄소 중립을 위해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해야 한다는 역설에 직면해 있다.”

“수소를 연구하면 할수록 놀라운 역설들을 발견하게 된다. ... 청정한 미래 에너지의 희망이면서도 생산 과정에서는 아직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콩고의 우라늄이 만들어낸 것은 아프리카의 번영이 아니라 서구의 에너지 안보였다. ... 같은 물질이 어떤 사람에게는 풍요로운 에너지를,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과 죽음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결국 코발트를 채굴하는 사람들이 코발트 부족으로 고통받는 모순적 상황이다.”


결국 이 책의 주제는 바로 이 역설이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원소 자체가 가지는 모순도 있지만, 미래의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 즉 탄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탄소를 더 많이 써야 하는 모순도 있고, 자원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하는 제3세계의 상황도 모순이다.


김병민 박사는 이 역설들을 해결해야 미래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지금의 거의 신비에 가까운 기술을 만든 인류이니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만(실제 그런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그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기술 문제야 인간이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역과 지역 사이의 불균형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10개 원소 이야기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화학 기술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순적인 현실에 관한 르포이고, 나아가 미래에 대한 경고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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