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데블린, 《수학자 피보나치》
피보나치(Fibonacci). 우리말 제목에서부터, 어쩔 수 없이 ‘피보나치’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피보나치는 피보나치가 아니다.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레오나르도를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부르는 전통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피사노. 즉 ‘피사의 레오나르도’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filius Bonacci’라고 쓴 적이 있고, 이것은 ‘보나치 가문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게 별명으로 피보나치가 되어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이 되어버렸다. 이 별명이자 이름은 피보나치 혹은 레오나르도 당대나 그의 시대에서 별로 떨어진 시기가 아니라 그가 죽은 지도 한참 후인 1838년에 역사학자 기욤 리브리가 지은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이것도 자신이 스스로를 불렀다는 이름이라는데, 바로 ‘비골로(Bigollo)’. 말하자면 당시 그를 어떻게 불렀을지는 아주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이름부터 확실하지 않은 이 인물의 생애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10대에 아버지를 따라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당시엔 유럽보다 발달한 아랍 세계를 경험하고, 수학을 배웠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그는 돌아와서 책을 썼다. 간단하게 《계산책(Liber Abbaci)》이라고 하는 책이다. 알고리즘(algorithm)의 어원이 된 알콰리즈미의 수학을 거의 그대로 들여와서 라틴어로 쓴 책이다. 1202년의 일이다.
피보나치, 혹은 레오나르도의 책은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소개하고, 그것을 이용한 각종 계산법을 많은 예제를 동원해서 알려주었다. 피사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중세의 막바지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복잡한 수를 다뤄야 할 필요가 늘어났다. 이때 레오나르도의 책은 딱 적절한 시기에, 딱 적절한 책을 쓴 썼다. 아마도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맨 처음 유럽에 알린 사람은 아닐지라도, 널리 퍼지도록 하는 데 가장 큰 공로를 차지할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키스 데블린은 여러 문헌 고증을 통해서 그가 이후의 ‘산술 혁명’이 일어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피보나치라는 이름은 이른바 ‘피보나치 수열’과 함께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것은 《계산책》 12장 중간쯤에 음식과 화폐의 분배에 대한 문제 사이에 뜬금없이 들어가 있는 문제에서 유래한다. 토끼의 마릿수가 어떻게 증가할지를 묻는 문제인데, 그것도 그가 고안한 것도 아니다. 그로부터도 한참 전부터 인도 수학자들까지 거슬러 가는 문제였다. 수학적으로는 F0 = 0, F1 = 1, Fn+2 = Fn+1 + Fn 로 정의되는 수열이다. 자연의 신비를 나타내는 이 수열은, 과장되어 소개되기도 한다(사실 알려진 만큼 신비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본다). 피보나치가, 자신이 발견하지 않았고, 중요하게 소개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것의 의미도 분명하게 깨닫지도 못했던 이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레오나르도 피사노, 혹은 비글로, 혹은 피보나치의 가장 큰 공로는 뭐니뭐니 해도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한 대수법의 도입이다. 이에 대한 유럽인들의 반응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레오나르도가 자신의 책을 활용할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삼은 상인들은 예상대로 신속하게 인도아라비아숫자와 이를 이용한 산술법을 채택했다. 하지만 대중은 반발했고, 엘리트 집단은 거부했다. 회계장부를 읽기 어렵게 만든다느니, 숫자가 쉽게 고쳐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느니 하는 이유였다. 법정에서 로마 숫자로 된 문서를 더 신뢰를 가지기도 했고, 법률로 금지하기도 했다. 물론 인도아라비아숫자의 우월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어서 조만간 모두가 이 숫자를 써서 계산하기 되지만.
그런데 조지프 마주르의 『수학 기호의 역사』에서 아주 잘 보여주고 있듯이(https://blog.naver.com/kwansooko/221020988205), 여전히 수학 기호가 없는 피보나치의 계산법은 익숙하지 않다. 수학이라는 게 당연히 주어진 게 아니란 걸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