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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28. 2020

과학사의 통념과 과학의 본질

로널드 넘버스, 코스타스 캄푸러키스, 《통념과 상식을 거스르는 과학사》

과학사의 통념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실제는 어땠는지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왜곡되고 받아들여졌는지를 해부하고 있다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기서 말하는 통념이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우리말로는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이고통하는 개념이라는 의미 정도로 해석되는 통념이지만필자들이 모두 똑같은 의미에서 통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또 그 의미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필자도 몇 없다그중에 가장 의미 있게 의미를 규정하는 건 라이너스 폴링의 겸상적혈구빈혈증 원인 발견과 관련한 통념에 대해 글을 쓴 브루노 J. 스트레서이다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통념은 단어 뜻 자체로 진실이 아닌 것이지만가치관이나 신념포부 등을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통념은 공동체의 집단 기억의 일부로서 사람들의 정체성과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 통념은 (불완전하게과거를 나타낼 뿐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227)

 

그러므로 통념이란 완벽히 진실은 아니다그렇다고 새빨간 거짓말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그게 그렇다고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분명히 있으며그 이유는 대체로 공동체적인 것이다그러므로 통념은 과거를 반영하면서 미래까지도 예측하게 한다이런 관점에서 여기에서 제시하고 있는 스무 개가 넘는 과학사의 통념들을 평가해야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생길 것 같다.

 

그러니까 콜럼버스 이전에 지식인들까지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는 통념이나 코페르니쿠스의 변혁이 지구의 위상을 추락시켰다는 통념은물론 그것 자체로는 진실이 아니다콜럼버스 이전에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고코페르니쿠스의 주장 역시 지구의 위상을 추락시킬 의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았다하지만 그런 통념이 생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이를테면 콜럼버스의 업적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든가또는 코페르니쿠스를 통해서 다윈의 이론이 가져온 충격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든가 하는 것이다(물론 이것만은 아니다). 또한 갈릴레오의 피사의 사탑에서의 실험(그런 실험은 없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이라든가 뉴턴과 떨어지는 사과의 관계(이것이 전설이라는 것은 이젠 이게 통념이 되었다역시 역사적 사실로서의 가치보다는 그렇게 설명했을 때그렇게 받아들였을 때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특히 21세기 지금의 관점으로서가 아니라 그 이론들이 발달해오는 과정에서 설득이라든가과학과학자의 위상이라든가 하는 측면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책에서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뜻밖의 내용에 대해서 잘못된 통념이라고 공격하고 있다이를테면 다윈이 20년 이상 자신의 이론을 감추었던 이유라든가, 19세기의 지질학자들의 대립(격변론자와 점진론자), 루이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반증이 기초한 생각사회진화론이 미국의 사회 정책에 미친 영향(식민주의라든가우생학이라든가),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미친 영향신다윈주의의 성격미국 과학교육 변화에 시발점이 되었다고 받아들여지는 소련 스푸트니크 충격과 같은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완벽히 틀린 것도 아니고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닌 그런 내용들이 대부분이라상당히 논쟁적일 수 밖에 없고다윈에 관해서는 비록 쓴 장은 다르지만(또한 친구이지만견해를 달리하는 뉘앙스를 찾을 수도 있다.

 

어쩌면 여기의 내용들이 논쟁적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전문적인 과학자가 아니면(아니전문 과학자도 자신의 완전’ 전공이 아닌 경우에는과학의 내용을 교과서를 통해서 얻는다교과서는 설명을 위해서 통념적인 내용을 그대로 서술하는 경우가 많고하나하나의 과학적 발견과 발달에 대해서 논쟁적인 내용을 기술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그러므로 우리는 과학을 정리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그게 과학 교육이라고 여긴다하지만 과학 활동의 관점에서는 그게 과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과학자는 기술되어 있는 대로의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지도 않으며항상 논쟁 속에 있다(만약 과학자가 하나의 논쟁 속에도 없다면그건 과학자가 아니라 교육자이거나 그냥 교양과학서술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이 책에서 물리치고자 하는 과학사의 통념이 무조건 잘못된 것이며여기의 내용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역시 하나의 통념이 될 수 있다다만 여기의 정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늘 의심하고확인하는 자세가 없다면 이것과 같은 책이 나올 수도 없으며과학의 정신도 이어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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