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트리샤 월트셔, 《꽃은 알고 있다》
미드 CSI 시리즈를 즐겨 보던 때가 있었다. 흥미진진한 사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이 과학적이라 더욱 끌렸다. 실험실에서 흔히 보던 기기와 시약들, 그리고 용어들에 눈이 반짝거렸던 것 같다. 하지만 CSI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과학 수사의 방법이 매우 강력하긴 하지만, 결과가 그만큼 빨리, 또 그만큼 정확하게 나올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회의감의 원인이었다. 드라마이니 만큼 시간상의 제약이 있고 그런 극적인 장면이 필요하겠지만, 정말 믿을 만한 과학 수사의 결과를 얻는 과정이 매우 지루하면서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며, 그 결과가 언제나 깔끔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퍼트리샤 월트셔의 《꽃은 알고 있다》 과학수사의 과정이 복잡하고, 또 전문성이 필요하며 또 강력한 수단이라는 것을 또 다른 의미에서 보여준다. 독특한 점이 있다. 바로 퍼트리샤 월트셔의 방법이 바로 식물을 통한 방법이라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주로 꽃가루, 화분(花粉)을 현미경으로 분석한다. 화분을 통해 식물의 종류를 알아내고, 시체가 놓였던 상황을 파악하고, 용의자가 그 상황을 겪었는지를 알아낸다. 이게 말이 쉽지, 시체의 코로부터, 용의자의 옷과 신발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현미경을 통해서 그게 그거 같은 꽃가루의 개수를 세고, 그 모양을 구분해서 식물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정말 고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퍼트리샤 월트셔는 경찰도 아니고, 과학수사 관련 연구소의 연구원도 아니다. 여러 직업을 거쳤으며, 결국엔 꽃을 통해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자리 잡았었다. 그러다 어느날 경찰에서 걸려온 전화로 그녀의 운명은 다시 선회했다. 그 경찰은 화분을 통해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고, 퍼트리샤 월트셔도 그 가능성을 반신반의하며 응했다. 그런 작업을 하며 그녀는 자신의 전공이 해결이 힘든 여러 사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운명은 흔쾌히 받아들였고, 자신이 쌓아온 전공 능력을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해한다.
이 책은 그녀의 성장 과정과 그녀의 새로운 삶을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그녀의 성장 과정은 누가 보더라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그녀가 거친 모든 과정이 그녀의 현재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성장 과정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성장 과정보다는 그녀가 해결해 온 사건들에 훨씬 관심이 간다. 그 과정의 어려움보다 그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판단되었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더 관심이 간다. 감(感이) 아니라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상을 그려나가는 과학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과학적 근거를 가진 상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비록 TV 시리즈에서 보는 극적인 반전 같은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서 더욱 신뢰감이 간다.
다만 그 과정이 다소 다양하지 않아 보인다는 점은 상당히 아쉽다. 아마도 퍼트리샤 월트셔는 그것들이 아주 독특한 사건에, 분명히 다른 상황이라고 여기겠지만 일반 독자들의 경우에는 그게 그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가장 재미있는 점은, 그녀가 재혼한 상대가 데이비드 호크스워스(David Hawkswirth)라는 것이다. 그녀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놀랐던 것만큼 놀란 것은 아니지만, 나도 그의 책을 가지고 공부한 경험이 있기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