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W. 케니핸, 《숫자가 만만해지는 책》
“수학이라면 질색이야, 난 숫자에 약해.”
이런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해 브라이언 케니핸은 아주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나는 수학에 완전 꽝이야“라고 말하는 학생들에게 1달러씩 위로금을 지급하느니, 나는 차라리 은퇴하고 말겠다. 그럴 돈이 있다면, 내 가족과 친구들을 아주 근사한 곳으로 데려가 저녁을 한턱내겠다. 대부분의 수포자들은 수학을 못하는 게 아니라, 엉터리 교육, 경험 부족, 동기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시도해보지도 않고 단념했을 것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199쪽)
미적분이니 하는 고급 수학이야 그렇다고 치고, 숫자에 대한 감각은 관심과 함께 어느 정도의 연습만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브라이언 케니핸의 얘기이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숫자가 만만해지는 책》이다.
세상에 난무하는 숫자들에 현혹되지 않고 쉽게 어림셈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이 책은 롭 이스터웨이의 《나는 수학으로 세상을 읽는다》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어림셈의 방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주 유사하고, 방법도 다를 바가 없지만, 여기서는 주요 언론 등에서 나오는, 잘못된 숫자, 계산을 중심으로 숫자 감각을 기르는 방법을 주로 다룬다. 숫자로 된 정보, 이를테면 비축유가 어느 정도 된다는 뉴스에 나오는 비축유의 양이 정확한지를 어림하는 방법, 매우 큰 수를 대할 때 당황하지 않고, 작은 수로 바꾸어 해석하는 방법(나와 관련지으며 그 숫자가 정말로 맞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단위의 오류를 파악하는 방법, 길이, 넓이, 부피의 관계를 헷갈리지 않고 잘 해석해내는 방법, 무늬만 그럴 듯하게 꾸며 놓은 숫자들의 허상을 가려내는 방법, 통계에 속지 않는 방법, 그림으로 상황을 잘못 판단하도록 하는 것에 속지 않는 방법 등등이다. 이것들을 계산하는 데는 기껏해야 곱셈과 나눗셈이 사용될 뿐이다(기하평균을 구할 때 단 한번 나오는 제곱근이 있다). 그러니까 수학이 어쩌고 저쩌고 할 것 없이 이 정도는 누구나 익숙해질 수 있다는 게 브라이언 케니핸의 얘기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숫자로 속이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런 면에서 범람하는 세상의 숫자에 속지 않고 똑똑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여기의 어림셈은 무척 유용하다.
그런데 아쉬움은 있다. 이 책의 원제는 <Millions, Billions, Zillions>이다. 이 단위를 혼동하면 숫자를 1000배나 잘못 파악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들은 영어로는 숫자를 쓸 때 세 자리 단위의 쉼표(,)로 끊어지고, 또 보통명사인데 반해 우리 식으로 로 하자면, 100만, 10억, 1조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사실 100만, 10억, 1조를 실수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책에서 쓰는 단위들은 대부분 미터법이 아니라, 야드법이다. 미국에서 나온 책이라, 거의 미국에서만 쓰는 단위를 쓰고 있다. 그걸 의식해서인지 미터법과의 변화되는 숫자(정확한 비율과 어림의 비율 모두)를 보여주고 있고, 또 그것을 혼동했을 때 잘못 파악하게 되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주로 쓰는 단위가 야드법이라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좀 매끄럽지 않다(사실 미터-야드법을 변화하면서 생기는 여러 구질구질한 문제들에 대해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데,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문제를 겪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