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석, 《세포: 생명의 마이크로 코스모스 탐사기》
과학 교양서적은 대체로 현재 과학 지식의 수준과 상황만이 아니라 그 지식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건 어떤 지식이란 배경이 있고, 그 배경을 토대로 했을 때에만 현재 지식 수준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어떤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은 그 지식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현재를 이해하고, 그 지식이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 혹은 생명과학도 마찬가지다. 그 두껍디 두꺼운 일반생물학 책을 다 이해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그 내용을 일부나마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게 일반생물학을 가르치는 학교는(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도) 없다. 운이 좋아 관련 강의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그러고 싶다고 늘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세포: 생명의 마이크로 코스모스 탐사기》에서 남궁석 박사는 이 책의 대상으로 세 부류로 나눈다고 했다(그 세 부류는 어디선가 읽은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분명히 그중 세 번째(전문적인 생물학 연구자)에 해당할 나는 이 책을 공부하듯 밑줄을 치며, 참고 문헌을 짧게나마 찾아가며, 내 생각을 요약해가며읽었다(그렇다고 오래 걸린 건 아니지만). 교과서의 한 줄의 명료한, 내지는 거의 분명한 사실로 기록되기까지의 과정을 어느 정도 알기에, 평범한 과학자의 기여와 함께 관련 연구의 돌파구를 찾아내 성과를 낸 뛰어난 연구자들의 번뜩이는 혜안을 감탄하며 읽었다. 남궁석 박사는 여기의 내용이 대학교 1학년 수준이라고 했지만, 여러 부분에서 그걸 뛰어넘는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없고, 또 설사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전문 과학자라고 여기의 내용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니.
로버트 훅의 세포 관찰과 안톤 판 레이우엔훅의 미생물 관찰에서 시작된 세포 연구가 21세기 시스템 생물학의 ‘세포 아틀라스 프로젝트’와 합성생물학의 인조생명 제작에 이르기까지의 ‘현대’ 생물학의 역사를 꼼꼼히 정리학고 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기조는 물리학이나 화학의 발전보다 (시작이 뒤늦지는 않았지만) 뒤늦었던 생물학의 특성에 관한 것이다. 어떤 개념이나 이론이 생물학의 발달을 선도한 것이 아니라 도구나 방법의 발달이 구비되어야만 그에 걸맞는 성과나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신경계만 하더라도 요제프 폰 게를라흐는 ‘망상체설(reticular theory)’를,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을 ‘뉴런 이론(neuron theory)’를 주장했는데, 거의 비슷한 것을 보았음에도 서로 다른 이론을 내세웠다. 누가 옳은지는 현미경과 염색 기술이 발달하면서 밝혀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내용들은 생물학을 연구하기 위한 방법들이 이용되는 장면들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을 이용하여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는 장면들은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지만 전율이 인다. 그래서 15장 <살아 있는 세포의 영상화>와 같이 생물학의 연구도구로서 현미경과 영상 기술이 발달에 대한 내용이야말로 다른 생물학 교양도서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 아닌가 싶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런 기술을 고안하는 이들이, 또 그런 기술을 이용하여 새로운 발견을 해나가는 이들이 부럽고, 또 어떤 면에서는 으쓱해진다.
한 챕터, 한 챕터가 그 시기에, 그 분야에서 결정적이고, 기가 막힌 연구를 소개하고 있기에 자체로 꽉 찬 느낌이고, 그것들이 모인 책 한 권을 읽은 느낌은 포식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