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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22. 2020

물리학의 교황, 엔리코 페르미

지노 세그레, 베티나 호엘린, 《엔리코 페르미 평전》

물리학의 교황’. 이 어마어마한 별명을 가진 이는 바로 엔리코 페르미다. ‘교황(Pope)’이라는 별명은 그가 노벨상을 받고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기 전 이탈리아 로마대학교의 젊은 교수로서 물리학과가 위치한 파니스페르나거리의 청년들과 함께 연구하던 시절에 붙여진 것이다그러나 그 별명은 정말 그를 상징할 수 있는 별명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중산층에서 태어나 물리학의 변경이던 이탈리아에서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우뚝 서고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고바로 파시즘의 폭압을 피해 미국으로 떠나 핵의 시대를 연 인물이 바로 엔리코 페르미였다원자 시대가 시작된 날이 언제인지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그 중에서도 인류가 핵의 분열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보여준 날을 바로 그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논리적이며 그럴 듯하다바로 그 날은 1942년 12월 2일 시카고대학의 스쿼스 경기장에 설치한 원자로에서 실험을 수행한 날이다바로 엔리코 페르미의 지휘 아래즉 원자의 시대핵의 시대를 연 인물 중에서도 핵심적인 인물로 엔리코 페르미를 꼽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지당한 선택이다.

 

물리학자인 지노 세그레와 베티나 호엘린(이들이 부부라는 것은 후기를 읽고서야 알았다그리고 이들의 가족은 각각 이탈리아로부터 미국으로 탈출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은 엔리코 페르미가 남인 자취를 따라 그를 기억하는 이들과 인터뷰를 하고그가 남긴 기록들을 하나하나 챙기며 엔리코 페르미의 생애를 조립하고 있다이 평전은 물리학을 포함한 과학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앎에 헌신했던 엔리코 페르미를 보여준다원자폭탄과 관련한 그의 관여에 대해서도그가 그 일에 개입했던 것도 (물론 전쟁 상황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만주로는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하는 욕심이 컸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엔리코 페르미는 이론과 실험에 모두 능했던아주 드문 물리학자였다그런 면모는 당시 물리학 시대를 이끌었던 여러 물리학자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그는 틀린 적이 없다고 한다(사실은 핵분열과 관련해서 잘못된 해석을 한 적이 있긴 하다). 놀랄 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했고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을 아주 간명하게 수행했다그것을 지휘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험을 수행했다그런 페르미였기에 시대와 사람들은 그를 요구했고그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할 수 밖에 없었다.

 

엔리코 페르미는 물리학자로서의 사명감이 컸고그 열정이 너무 앞섰기에 아버지로서남편으로서 다소 부족했을지 모르고감정적으로 메말랐다는 평을 받기는 했다그래서 자식들이 조금 엇나가기도 했다(그만큼 유명한 아버지를 둔 아들의 압박감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딸이 증언하는 것처럼 그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그는 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페르미는 언제나 페르미였다.”

 

시대의 소용돌이에 그가 개입했던 일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설왕설래한다과학자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란과 논의가 여전히 분분하다하지만 천재의 재능은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도 쓰였지만 (그의 아내가 강력하게 주장하듯이또한 인류를 위한 자원이 되기도 했다쉽게 판단 내리기 힘든 일이다특히 그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연구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이 평전은 엔리코 페르미를 중심으로 하지만그래서 다소 편향될 수 밖에 없지만당시 물리학의 거장들이 지적 흐름과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사실 그게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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