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슈 게이브리얼x데이비드 M. 페리, 《맹세를 깬 자들》
매슈 게이브리얼과 데이비드 페리는 《빛의 시대, 중세》에서 중세가 사람이 살던 시대였다는 것을 16개 도시 이야기를 통해 보여줬었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3183077196). 《빛의 시대, 중세》가 중세에 대한 맹목적 편견을 걷어내는 입문서와 같다면, 《맹세를 깬 자들》은 그 중세에서 벌어졌던 한 제국의 구체적인 역사를 통해 중세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 말하자면 《빛의 시대, 중세》가 종적이라면, 《맹세를 깬 자들》은 그에 비하면 횡적이다.
저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역사는 바로 프랑크 제국의 역사다. 프랑크 제국은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혼돈의 유럽을 정리하면서 등장했던 제국이다.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프랑크족은 ”8세기를 거치면서 (…) 불과 칼로 제국을 건설했다.“ 이슬람이 점령한 이베리아 반도나, 영국 제도, 동로마 제국의 영향이 미치는 지역,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을 제외한 우리가 유럽이라고 했을 때 몸뚱어리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지역을 지배했던 제국이 프랑크 제국이다. 말하자면 당시의 유럽은 프랑크 제국이었다.
그중에서도 메로베우스(혹은 메로빙거) 왕조의 궁재(宮宰, Mayor of Palace) 가문 출신의 카롤루스 마그누스가 제국을의 황제가 된 이후, 카롤루스 가문을 중심으로 벌어진 권력 투쟁의 이야기다. 이는 프랑크 제국의 최전성기 바로 직후에 벌어진, 분열의 단초가 벌어지고, 결국 제국이 분할되는 내리막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라흐트, 라돌레이바, 나스그, 엔티“라고 하는 역사의 구분에서 나스그와 엔티에 이르는 이야기다.
프롤로그는 841년 6월 앙젤베르라는 귀족이 전장에서 도망쳐서 끔찍한 참상을 시로 적게 된 사연에서 시작한다. 바로 제국의 분할이 결정된 사건이라고 하는 퐁트누와 전투 이야기다. 841년 6월, 경건왕 루도비쿠스 1세의 아들들은 두 개의 편으로 나뉘어 퐁트누와에서 전쟁을 벌였다. 역사에서는 이 전투와 이후 왕가의 형제들 사이에 이뤄진 스트라스부르 맹세와 베르됭 조약으로 프랑크 제국이 분열하여 지금의 프랑스와 독일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멀리 떨어져서 역사를 교과서로 쓴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런 시각은 19세기 민족주의 발흥의 시기에, 그 시기에 필요한 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한 역사라고 본다. 그 시대를 편견 없이 들여다보면 다른 모습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왕가의 인물들은 이렇게 이어진다. 카롤루스 마그누스(카롤루스 대제라고도 불린다) 이후 장자인 꼽추 피피누스가 반란을 기도하다 실패하고, 십여 년 후 결국 황제 자리는 경건왕 루도비쿠스 1세가 승계한다. 경건왕 루도비쿠스 1세에게는 아들 세 명이 있었고(이복형제), 여기에 꼽추 피피누스의 아들 아키텐의 피피누스 2세도 있었다. 아들들은 아버지를 향해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키지만, 경건왕 루도비쿠스의 치세는 흔들리면서도 굳건했고(비록 타협을 거치긴 했지만), 결국 황제 자리를 유지한 채 죽는다. 제국의 분열은 아들들, 로타리우스 1세, 독일왕 루도비쿠스, 대머리왕 카롤루스 사이에서 벌어진다. 황제가 된 이탈리아와 로타리우스는 아키텐의 피피우스 2세와 손을 잡고, 독일왕 루도비쿠스와 대머리왕 카롤루스가 연대해서 퐁트누와에서 전투를 벌이고, 후자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 역사는 이후의 맹세와 조약을 통해 프랑크 제국이 세 구역으로 나뉘게 되었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왕가의 연대가 보통의 집안과 다르다는 걸 느끼는데, 이탈리아의 로타리우스와 독일왕 루도비쿠스가 친형제이고, 대머리왕 카롤루스는 이복형제임에도 연대의 상대는 이와는 달랐다.)
그런데 저자들에 따르면 퐁트누와 전투는 매우 이례적이었다고 한다. 이전까지의 황위를 겨눈 전투는 열전(熱戰)으로 벌어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서로 세력을 과시하고 어느 한쪽이 중과부적을 느끼면 내빼는 형태였다는 것이다. 그저 서로 공격하는 시늉만 하는 전투가 서로 승리를 장담하는 가운데 처참한 전투가 벌어진 게 바로 퐁트누와였다: "그러나 퐁트누와에서는 자비를 베풀거나 포로로 사로잡는 일반적 관행, 적이 후퇴하게 두는 규범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러한 퐁트누와 전투를 계기로 "수 세기 동안 지속될 고질적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니까 저자들은 퐁트누와 전투를 근대 이후의 프랑스나 독일 형성에 계기가 되었다는 측면보다 전쟁의 참혹함이 벌어지는 계기로써 더욱 큰 의미를 두는 듯하다. 실제로 이 전투로 크게 변한 것은 없다면서 말이다. 사실 애초에 프랑크 제국이라는 통일성은 환상이자 거짓말이었다!
우리에겐 그리 익숙한 역사가 아니다. 그런데 맹세와 배신이 반복되는 이 유럽의 중세 이야기는 매우 현대적이다. 사실 그 당대를 살던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가 가장 현대적이었다. 이전 시대를 계승하면서도 가장 진취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록 지금만큼 속도가 빠른 시대는 아니었지만, 매우 역동적인 시대였다. 사회적 갈등을 푸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으며, 승리에 도취하기도, 패배에 절망하기도 했지만, 결과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그저 중세에 벌어졌던, 그냥 흥밋거리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정말 많이 밑줄을 그으면서, 띠지를 붙이면서 읽었지만, 몇 부분만 가려서 다시 읽어보면 이런 부분이 눈에 띈다.
"중세의 사람들 누구도 이항 대립적 세계에 살지 않았고, 그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복잡성이 가득한 세계 속에 살았다." (35쪽)
- 우리는 과거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복잡다단한 면은 인간이란 하나의 종으로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대기 작가가 사건을 실제 일어난 대로 기록하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연대기는 보통 사건이 일어나고 한참 뒤에 쓰였고, (연대기에 포함함으로써) 부각시키거나 (연대기에서 제외함으로써) 침묵시키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선택한 특정 사건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53쪽)
- 역사를 읽을 때의 자세! 이 책을 포함해서.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는 대목은 다음 대목이다.
"그러나 내전이란 오로지, 심지어 대체로, 왕이 되려는 자들에 관한 일이 아니다. 대신 그것이 삶이 망가진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죽었거나 죽은 그 사람들을 애도하는 거의 셀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359쪽)
- 저자들은 카롤루스나 루도비쿠스, 피피우스 등 "같은 이름, 같은 가문, 같은 폭력의 계보"를 중심으로 역사를 써야 하는 난감함을 토로하고 있다. 사실 그래야 재미있기도 하다. 그러나 늘 조심해야 한다. 그것만이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저자들은 역사 쓰기에서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고 있다. 역사가들은 그들이 보고자 한 ‘진실’을 쓴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은 아니다. 프랑크 제국의 분열에 이르는 역사도 매우 제한되어 전해지는데, 저자는 그 제한된 ‘진실’의 역사 속에서 ‘사실’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도 사실은 ‘진실’의 역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