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 친구입니다"

오션 브엉, 《기쁨의 황제》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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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 소년도 청년도 아닌 한 사내가 철교에서 강물로 뛰어내리려 한다. 지켜보고 있던 한 노부인이 말리고, 결국 둘은 함께 살게 된다.


소년도, 청년도 아닌 사내는 하이, 혹은 라바스. 그는 리가빗, 그러니까. LGBT.

그는 베트남계 이민자이고, 마약 중독자이고, 대학 중퇴자이며, 엄마에게 보스턴의 의대에 합격했다고 하고 집을 떠난 거짓말쟁이다. 재활 센터에서 나와 자살을 시도한 것이었다.


노부인은 그라지나. 리투아니아 출신 이민자. 홀로 살고 있는 알츠하이머 환자.


하이는 사촌동생이 일하는 홈마켓이라는 프랜차이즈 식당에 취직한다.

소니. 하이의 사촌동생. 남북전쟁 역사에 집착하는, 경증의 자폐증. 아빠는 죽었고(혹은 떠났고), 엄마는 감옥에 갇혀 있다. 보석금을 마련하려고 하지만 그의 일당으로는 턱없는 일이다.


그리고 홈마켓의 직원들이 있다.

그들은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가진 조금의 것이 아깝지만, 그 조금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다. 하이와 소니는 그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사이에서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그것은 문장으로 쓸 수 없는 것이지만,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건 ‘근육 기억’과 같은 것이었다. "조그마한 주방에서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봉급을 받으며 함께 고생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이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를 거의 근육 기억을 통해 알고 있었다."


베트남계 이민자 작가. 오션 브엉은 이들의 이야기를 시적(詩的)인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시인 출신이다. 그는 어쩌면 거짓말하는 하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소설이란 허구라는 것을 들춰내고 있는 듯하다. 하이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소설의 본질은 거짓말이지만, 왜 거짓말을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소설은 거짓말로 진실에 다가가는 장르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농도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하이나 그라지나나 모두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왔다. 전쟁의 트라우마는 수십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DNA에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소니가 남북전쟁사에 집착하는 게 바로 그 유전자의 발현일 지도 모른다. 그들의 목적지는 미국이다. "진정한 미국. 모두가 거기 가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 그저 커다랗고 낡은 문일 뿐이에요."

그들이 전쟁을 피해 삶을 찾아 닻을 내린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하이는, 소니, 그라지나는, 그리고 홈마켓의 직원들은 묻는다.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 기회를 부여잡는 이는 거의 없다. 닻을 내렸지만, 뿌리는 내리지 못하는 나라.


소설의 제목은 이중적이다. ‘기쁨’으로 해석한 ‘글래드니스(Gladness)’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스트글래드니스’이기도 하고, 인근의 ‘글래드니스’라는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글래드니스’라는 마을은 이름을 바꿔, 없어진 마을 이름이라는 점이다. ‘황제(Emperor)’도 마찬가지다. 여기의 황제는 ‘황제 돼지’에서 왔다. 일본의 덴조(天皇)에게 바쳐진 돼지. 그러나 현실은 도살장에서 볼트가 들어 있는 권총으로 사살되는 운명이다. 과연 황제라는 이름을 환영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한 번만 사는 것이다."이란 문장으로 소설이 시작한다. 고쳐 말하면 한 번밖에 살 수 없기에 힘든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한 번만 살 수 없는 인생을 여러 번 경험하게 한다(흔히 하는 말이다). 하이는 소설을 읽는다.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그래서 하이는 다른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을른지 모른다.


"투 에시 마노 드라우가스."

"당신은 내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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