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

박주용,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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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문화물리학자’ 박주용.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문화물리학? 학문의 경계라는 게 인위적인 것이고, 추세가 융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문화’와 ‘물리학’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학문 분야의 정체가 도통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다만 ‘사회물리학’이라고 한다면, 사회 현상을 물리학적으로 분석하고 바라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고, 그게 통계물리학과 상당히 관련이 있다고 여기고 있는데, 문화를 물리적으로 분석한다는 게 그다지 잘 와닿지 않는 것이다.


그런 난감함은 스스로 문화물리학자라고 하는 박주용 교수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교수로 일하는 10년 넘은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질문을 던져왔다고 하니 말이다. 문화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우는 것인지, 물리학의 한 분야인지도 불분명해 보이지만, 그래도 교육 배경을 보아하니 물리학 배경이라는 것 정도 짐작할 만하다. 게다가 통계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니, 어쩌면 사회물리학과 비슷한 연구 주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일관된 흐름의 정돈된 책이라기보다는 이미 매체에 발표된 글을 정리한 느낌의 책이다. 그래서 조금은 어수선한 면도 없지는 않은데, 어수선함이 그렇게 불쾌한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방면에서의 접근이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어수선함의 원인이기도 한데, 여러 소재를 글감으로 여러 주제를 다룬다.

소설, 영화, 미술, 음악이 모두 소재가 되고 있다(그래서 ‘문화’다). 물론 물리학과 같은 자신의 전공도 포함한다(당연히 과학도 문화의 한 분야로 볼 수 있다). 그런 문화적 소재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데, 주로 미래, 창의성 등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소재는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소설, 영화, 미술, 음악이라는 장르적인 의미에서는 친숙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들어간 작품들은 모두 친숙한 것만은 아니다. ‘물리학자’ 박주용 교수가 얼마나 많은 문화적 관심거리가 있었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어떤 이는 연구하는 사이에 그런 것들에 언제 관심을 가질 수 있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지만, 나는 전혀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관심은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이로 나아갈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박주용 교수의 다양한 관심에 박수를 보내고,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소재는 물론 과거의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주제는 분명 미래지향적이다. 그리고 인간적이다. 그런데 다소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은, 미래지향적이라는 말이 AI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다들 AI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여기에 적응하고, 또 이용해야 한다고 하는 마당에 미래를 이야기하는 (문화)물리학자가 여기에 손을 들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AI 시대에 인간적 창의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 있고 중요하다. AI가 인간이 추구해야 할 바, 목적지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AI의 시대라고 하는 현재를 비판적으로,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AI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AI 시대를 딛고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가지면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박주용은 그것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특히 가슴과 머리에 함께 들어온 대목만 인용해 보면,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human)’, 그리고 사고능력을 상실한 ‘사람들(people)’. 인류가 그렇게 둘로 나뉘게 된 계기는 사람의 사고를 대신해 줄 수 있는 AI의 출현이라고 한다. 귀찮고 머리를 아프게 하는 힘든 생각 따위는 AI에게 맡겨버리는 편리한 길을 택한 ‘사람들’은 삶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AI를 조종하는 ‘인간’들에게 조종당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사람들을 지배하는 AI를 지배하는 인간> 중에서)


""언어 AI가 처음 나왔을 때는 우주가 자연과 철학을 논할 수 있다면서 열광하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표준화된 자격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고 열광하고, 이제는 컴퓨터 문서를 잘 만든다고 열광하네. 그런데 이렇게 열광하는 사람들이 다 같은 사람들이더라.”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추상적인 주제에 대해 논하는 능력을 고차원적인 언어 구사력으로 여기는 상식에 역행해, 챗GPT에 대한 평가는 성능이 좋아질수록 오히려 ‘철학을 논할 수 있는 대화 상대’에서 ‘문서 작성 도우미’로 달라진 것이다."

(<어제는 철학자, 오늘은 말하는 사용설명서?> 중에서)


사이 책은 어떤 답을 주고 있지는 않다. 사실 창의성을 말하는 책이 답을 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고, 각종 문화적 현상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찾아왔다. 그 답들이 다 옳지도 않았지만, 그런 노력 속에서 인류는 지금까지 왔다. 이제 새로운 시대다. 인간의 창의성 자체가 위협받는 시대다. 이제 우리는 AI에 의존해도 되는가? 문화물리학자 박주용은 분명히 이야기한다. AI는 우리의 답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답을 찾아야 한다. 미래는 저절로 생성되지 않는다.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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