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메모의 순간》
김지원, 하면 솔직히 배우 이름부터 떠오른다. 그러나 여기에 ‘김스피’라는 닉네임이 붙으면 달라진다. 적어도 나에게는.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https://blog.naver.com/kwansooko/223404503801)이란 책에서 처음 만나 그가 쓰는 뉴스레터 <인스피아>를 열렬히 읽었던 구독자였으니. 부서를 옮긴다면 이제 더 이상 뉴스레터를 보내지 못한다는 마지막 이-메일을 받아보면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그 아쉬움을 이렇게 다른 책으로 달랜다. 책 출간 소식을 몰랐었다(왜냐하면 나에게는 김스피가 익숙했지, 김지원이라는 이름은 저자로서는 낯설었으니). 도서관의 진열된 책을 살피다 집어 들었는데, 안쪽 날개에 쓰인 저자 소개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메모의 ‘역사’ 같은 건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 메모를 잘 쓰는 방법 같은 것은 더더욱 언급하지 않는다. 메모의 유용성 같은 것도, 가끔은 행간에 묻어나지만 명시적으로 쓰고 있진 않다. 그냥 메모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메모의 전 단계인 읽기와 메모의 다음 단계의 쓰기, 그리고 그것을 잇는 메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은 메모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읽기와 쓰기에 관한 얘기다.
나도 메모를 한다. 아직도 손으로 쓰는 공책을 들고 다니며 스케줄을 적고,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또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쓴다. 또 다른 종이 쪼가리에 쓸 수밖에 없을 땐, 그걸 가져와서 붙여놓기도 한다. 그러나 광적이진 않아서 빈 자리가 많다. 실은 더 중요한 메모는 지금 이와 같은 쓰는 글이다. 책을 읽으며 기억해 둘 만한 내용이 있으면 써서 포스팅한다. 또 이렇게 서평 내지는 독후감이라고 칭하는 글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메모다. 잊지 않기 위해 하는 행위의 일종.
즐거움을 얘기한다. 메모를 하기 위해 읽을 때의 즐거움, 메모를 하는 순간의 즐거움, 그리고 메모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할 때의 즐거움. 그 어느 것이나 즐겁다. 메모가 가지는 효용성이란 다름 아닌 그것의 소용에 닿은 어딘가에 있지 않고, 그저 즐거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기억하고자 하는 강박에서 비롯된 메모는 진정한 메모가 아니다. 그것은 괴로울 뿐이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내 머리와 가슴에 왔을 때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메모가 진짜 메모다.
그래서 김지원은 ‘해찰’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한다. 사실 이 해찰이라는 단어는 전의 책에서도, 뉴스레터에서도 봤던 것 같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해독하지 않았었다. 그냥 그런 것이려니 했다. 그래도 읽을 수는 있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그 의미를 정확히 해독하지 않고서는 문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찾아봤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해찰
1. 마음에 썩 내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침. 또는 그런 행동.
2.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함.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느 쪽을 택해서 쓰고 있는지는 상관없을 듯하다. 무언가를 작정하고, 그것에만 매달리는 태도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스스로 이렇게 쓰고 있기도 하다. ”계획을 덜 세우고 고삐를 덜 잡아야 낯선 세계로 흠뻑 빠져들어갈 수 있다. 이런 산만하고 열린 관찰을 나는 ‘해찰’이라는 단어로 표현해왔고“, 메모라는 것도 바로 그런 해찰에서 비롯되고, 그 결과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에게 메모란 강박이 아니다.
그럼에도 조금은 미소 짓게 되는 장면이 있다. 뉴스레터를 쓰기 위해 무작정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메모를 작성하는 장면이 그렇다. 물론 저장을 위한 것은 아니니 저장 강박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메모에 매달리며 뉴스레터를 써가는 모습이 강박적인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물론 나도 뭘 쓰는 걸 자유로운 마음에서 하는 행위라고 하겠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이것도 강박이다. 내게도 메모는 강박이다.
‘해찰’은 아니었지만, 생각 많이 하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