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시아 에방헬리스타, 《어떤 사람들은 죽어야 합니다》
‘주로 로디, 때로 디공, 때로 Du30으로 불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 그는 2016년 부정부패자와 범죄자를 죽여버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그의 ‘죽여버리겠다’는 말은 은유가 아니었다. 진짜 죽였다. 다바오의 시장이었던 그는 이미 그곳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그의 재임 6년 동안, 정부의 보고로는 7000명가량, 그러나 다른 집계로는 3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비사법적 처형’을 통해 살해당했다.
필리핀의 독립 언론사 래플러(Rappler)(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레사가 이끈다)의 기자 파트라시아 에방헬리스타는 바로 그런 대통령의 비호 아래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마구잡이로 살해되는 상황을 추적했다. 두테르테의 어린 시절(그는 서민 출신이 아니었다. 주지사의 아들이었다), 22년간의 다바오 시장 시절의 이야기에서부터 2016년부터 벌어진 살인 사건들(물론 경찰 등 정부에서는 그렇게 발표하지 않았지만)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은 물론 경찰 관계자들, 암살단원들을 만났다. 그 과정은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운 것이었다. 그들은 죽인 후에 이유를 만들어냈고, 조작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기사가 나왔고(그녀의 안위를 걱정해 발표 하루 전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왔다. 그녀는 극단적인 말과 행동의 지도자가 등장하고, 이에 국민들이 환호하면서 벌어진 집단 학살의 현장을 고발한다.
필리핀은 우리보다 먼저 민중 봉기를 성공한 국가였다. 마르코스 독재 치하에서 1983년 아키노 전 상원의원이 공항에서 피살된 이후, 1986년 항생을 통해 그의 부인인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그때 그 뉴스들을 들으면서 부러워하던 게 생각날 정도로 인상 깊은 장면을 필리핀 민중을 일궈냈다. 그러나 이후의 필리핀은 정상적인 민주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듯하다. 코라손 아키노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무능력했고, 그 무능력은 지방의 한 도시에서 징벌자로 이름을 드높이던 두테르테 같은 인물을 불러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필리핀 영어로 등재된 ‘salvage’다. 뜻은 "(범죄 용의자를) 재판 없이 체포하거나 처형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고, 또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첫째는, 두테르테는 왜 그런 극단적인 일을 벌였을까? 신념일까? 아니면 그런 처사를 시민들이, 국민들이 호응할 거라 계산했기 때문일까? 원래 폭력적인 인물이라서 그런 것일까? 투테르테의 폭력적이었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짧게 언급하고 있는 파트라시아 에방헬리스타이지만 이에 관해서는 깊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두 번째는 이러한 대량 학살의 책임이 과연 투테르테나 경찰, 암살단 등에게만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이에 호응한 것은 국민들이었다. 그래서 책의 부제로 '대중이 동조한 내 국가의 살인 기록'을 덧붙이고 있고, 맨 끝 장에 <이것이 우리의 참회입니다>라면서 지지를 철회하는 이들에 대한 기록도 남기고 있다. "오히려 내가 분노한 대상은 지난 4년 동안 관의 행렬이 이어질 때는 외면하다가 이제야 정의로운 양 분개한다고 알리는 모든 사람이었다."며 지지자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와 관련한 부분은 많지 않고, 어조도 그리 세지 않다.
그런데 더욱 큰 의문은 그런 시절들(왜 복수냐 하면, 독재자 대통령, 무능한 대통령, 폭력적인 대통령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을 겪고도 국민들은 여전히 그들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마르코스 이후에 아키노, 또 아키노, 두테르테 다음에 마르코스의 아들 마르코스 대통령과 두테르테의 딸 두테르테 부통령. 밖에서 보기엔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두테르테는 2025년 3월 11일 인도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 체포되었는데도, 그해 5월에 득표율 88%로 다바오 시장에 당선되었다. 심지어 부시장은 그의 막내 아들이었다.
이걸로 필리핀 국민들을 비아냥거리긴 쉽다. 그러나 이건 어느 국가, 어느 사회에나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우리도 그런 선택을 했었으며, 또 앞으로 어떤 국가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국민들은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지도자에 환호할 수 있으며, 그런 극단적인 처사의 피해가 바로 자신, 자신의 가족에게 이르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사회를 안전해졌다며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이 중요하지만, 그게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지 추상적인 것이라 어쩌면 실망스러울 때가 없지 않다. 이런 기록을 통해 배우는 수밖에 없다.
두테르테는 ‘마약과의 전쟁’이라고 했다. ‘전쟁’은 은유이기도 했지만, 실제이기도 했다. 여기서는 주로 그 전쟁을 실제와 같이 행한 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있지만, 나는 그게 은유라고 해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이라는 말, 상황 자체가 법을 벗어난 폭력을 옹호한다.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