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페나크, 《몸의 일기》
몸에 대해 가장 많이 의식할 때가 언제일까? 아마도 아플 때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가 삐그덕대고, 고장도 나면서 몸이란 걸 인식하게 된다(왜 이렇게 오른쪽만 문제가 생기는지…).
또 있다면, 아마도 사랑을 나눌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건 나의 몸이 아니라 상대방의 몸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 《몸의 일기》에서 화자는 열두 살 때 보이스카우트 활동 중에 혼자 숲속에 버려져 치욕스런 경험을 한 후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면의 이야기를 담는 보통의 일기와는 달리 몸에 관한 일기를 쓰겠다고 작정하고 70년 넘게 이어간다. 물론 중간에 중단되기도 했지만 끈질긴 몸에 관한 탐구였다.
《몸의 일기》의 화자에게도 자신의 몸을 인식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계기는 질병과 성(性)이었다. 그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병을 얻어 돌아온 아버지에 대한 인식부터 시직하는데, 곧 자신의 몸에 생기는 여러 이상 증세로 이어진다. 등장하는 질병이 참 많다. (내가 기억해서 헤아리는 건 쉽지 않아 옮긴이의 말에서 가져오면) 이명, 건강염려증, 구토, 티눈, 용종, 불안증, 불면증, 비출혈, 현기증, 건망증, 노안, 코피, 전립성비대증, 치매 등과 관련된 상황은 물론(화자는 이런 질병들이 자신의 자산이라까지 한다) 처음 성관계를 맺은 이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여성에 대한 관심, 자신의 성기에 대한 변화도 거리낌 없이 언급한다. 그래도 일기니까!
그런데 관심이 가는 건 육체와 정신 사이의 관계다. ‘몸의 일기’라고 했고, 화자도 종종 내면에 대한 언급은 삼간다고 했지만(“내면 일기에 대한 내 거부감은 더 확고해진다”, 199쪽), 어쩔 수 없이 ‘생각’이라는 게 일기에는 등장한다. 아니 사실은 모든 게 생각이고, 인식이다. 그것은 화자가 건망증에 대해 인식하게 되면서 언급했던 것(“난 그걸 심리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멍청하긴! 건망증이란 현상은 오로지 몸과 관련돼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건 정기다. 정신 회로의 접촉 불량. 연관된 뉴런들 사이에서 시냅스가 연결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370쪽)에서 볼 수 있듯이 인식이라는 것 자체가 물질적인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몸과 정신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면서 몸에 대해서만 쓴다고 했지만, 별 수 없이 이 일기의 형식을 띤 소설은 몸과 그에 대한 ‘생각’의 일기인 셈이다.
또 하나 인식하게 되었던 것은, 사건은 많은데 ‘역사적’ 사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럴 생각하게 된 것은 1968년도의 일기를 읽으면서 프랑스 작품인데 68혁명에 관한 내용이 없는 걸 깨닫게 되면서다. 그리고 그러고 보니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도 그다지 깊은 성찰이 없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으면서도 어떤 자각이나 애국적 결심을 통해서 이뤄진 게 아니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탈역사적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즈음, 1986년 62세 때의 일기에 와서야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불안이 죄의식으로… 모나는 내 얘기를 듣더니 ‘죄의식을 갖게 하다(culpabiliser)’라는 단어가 프랑스어에 생겨난 건 1946년이었다고 설명해준다. 그리고 ‘죄의식을 벗게 하다(déculpabiliser)’라는 동사는 1968년에 생겼다고. 역사가 스스로에 관해 이야기하던 시절…” (332쪽). 그러니까 역사는 관통하고 있었다. 일기에 적지 않았을 뿐.
어린 시절부터 젊음의 시기를 거쳐, 중년으로, 그리고 노년으로 이르면서 몸에 대한 생각은 바뀌어 간다. 나도 각각의 시기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내 몸을 찾아봤다. 비슷한 것도 있고, 겪지 못한 것도 있으며, 반대로 내가 인식한 몸이 여기에는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몸에 대한 경험과 생각이 바뀌어 가는 것은 진실에 가깝다. 아직 겪지 못한 몸의 변화, 몸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이와 같을 걸 생각하면 조금 두렵고, 조금 안타깝고,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극사실주의 속에서 태어나 점점 더 느슨해져서 아주 대략적인 점묘법으로 끝나 결국엔 추상의 먼지로 날아가버린다.” (215쪽)
내가 내 몸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그 주인이라는 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