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루이스, 《블라인드 사이드》
마이클 루이스.
《머니볼》의 저자. 내 오래된 기억 속에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는 책이다.
내가 읽은 책 가운데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세계 감염 예고》,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가 마이클 루이스가 쓴 책이다.
그 밖에 번역된 책으로는 월스트리트의 투자 전략을 다룬 《라이어스 포커》, 암호화폐의 실과 허를 다룬 《고잉 인피니티》, 트럼프의 등장으로 인한 미국 민주주의의 붕괴를 다룬 《다섯 번째 위험》,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되는 《불량아빠 육아일기》와 같은 책들이 마이클 루이스가 썼다.
그의 관심은 넓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기본적으로 미식축구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니까 야구를 배경으로 한 《머니볼》과 궤를 공유한다.
미식축구는 잘 모른다. 아주 간단한 규칙만 알 뿐이다. 몇 명이 필드에 나서는지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그것도 앞쪽의 기영노 씨의 설명으로 알게 되었다). 번역한 박중서도 이 책을 번역 출판하는 데 애를 먹은 이유가 미식축구가 우리나라에서 너무도 낯선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 ‘블라인드 사이’의 첫 번째 의미, 미식축구에서의 의미는 쿼터백의 오른쪽 측면을 가리킨다. 대체로 오른손잡이인 쿼터백에게 오른쪽은 시야가 제한된다. 그래서 그곳이 ‘블라인드 사이드’, ‘사각지대’다. 수비하는 쪽은 그쪽 입장에서 왼쪽으로 접근해서 쿼터백을 덮치는 것을 노린다. 그래서 공격하는 쪽에서 중요해지는 게 쿼터백의 오른쪽을 방어해주는 역할을 하는 레프트 태클이다.
이러한 상황은 미식축구에서 전술의 변화와 더불어 생겼다. 미식축구, 우리는 ‘미식’축구라고 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냥 ‘풋볼(football)’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발로 공을 다루는 경우는 별로 없다. 미국인들의 원초적인 정복 정신을 상징하는 미식축구는 전진을 우상화한다. 그래서 공을 들고 앞으로 뛰는 것이 원래의 전술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에 천재적인 코치인 빌 월시에 의해 기동성을 중시하면서 쿼터백의 역할이 극대화된다. 평범해 보였던 조 몬태나와 같은 쿼터백이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전략을 망치는 전략이 등장한다. 바로 앞서 얘기했던 블라인드 사이드를 공략하는 전략이다. 그리고 또 이에 대응해서 레프트 태클이 중요해진다. 이 흐름에서 이 책의 주인공인 마이클 오어가 등장한다.(미식축구 자체를 잘 모르지만, 스포츠에서 전략이 등장하고, 이 전략에 대응하는 전략이 등장하고, 또 다시... 이러한 흐름에 대한 얘기는 정말로 흥미롭다. 어떤 스포츠에도 해당하는 얘기다.)
마이클 오어는 빈민가 흑인 소년이었다. 자는 곳도 일정하지 않고, 학교도 열다섯 군데나 전전하면서 제대로 다니지 않던 소년이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백인 지역의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고, 우연히 백인 부호 부부의 눈에 띈다. 그는 키가 195cm에 몸무게는 140 kg이 넘는 산과 같은 거구였다. 그러면서도 매우 유연했으며, 매우 빨랐다. 놀라운 운동신경을 지닌 그는, 이 책에서 여러 차례 인용하고 있듯이 ‘자연이 낳은 괴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미래는 암담한 상태였다.
마이클 오어를 보살핀 숀 투이는 가난한 백인 출신이었다. 어렵사리 농구 선수로 대학에 진학하고 포인트 가드로 놀라운 성적을 거뒀던 그는 사업을 성공한 차였다. 그리고 그와 같은 학교 출신의 아름다운 리 앤이 있었다. 리 앤은 골수 인종차별주의자였던 아버지와는 달랐다. 숀과 리 앤은 기꺼이 마이클 오어의 후견인이 되었다(영화에서도, 이 책의 소개에도 양부모가 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후견인이었다). 그들은 마이클 오어의 마음을 열게 하고, 운동에 전념하게 했고, 대학 진학을 위한 학점을 위해서 온갖 방법을 썼다.
마이클 오어는 전국 대학 풋볼 팀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러브콜을 받는다. 그는 양부모가 나온 대학을 선택하고, 1학년으로서 이례적으로 경기에도 나선다(비록 승부에서는 졌지만). 책은 이쯤에서 마친다. 마이클 오어의 이야기는 《머니볼》처럼 영화화되었다. 이 책의 제목과도 같은 <블라인드 사이드>. 산드라 블록은 영화의 주연을 맡았고, 아카데미상 여우 주연상을 탔다고 한다(난 영화를 보지 못했다). 옮긴이의 글을 보면, 영화는 미식축구(의 전술 변화)에 관한 얘기는 최소한으로 다루고, 마이클 오어와 리 앤 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감동적인 스토리로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머니볼>과는 조금 다른 접근이다(물론 책 《머니볼》보다 영화 <머니볼>은 훨씬 감상적이다).
책은 마이클 오어가 대학교 1학년까지의 이야기로 맺는다. 10년을 더 기다려 쓸 수도 있었지만, 그때까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검색해 본 결과) 마이클 오어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대로 NFL 2009드래프트에서 볼티모어 레이븐스 1라운드에 뽑혀 5년간 1380만불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는 기대만큼 유명한 선수는 되지 못했다. 몇 개 팀을 옮겼고, 부상으로 2017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영화(심지어는 책)이 실제를 왜곡하는 점이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마이클 루이스가 숀 투이와 유치원 시절부터의 친구라는 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을 지도 모른다. 숀과 리 앤의 마이클 오어에 대한 헌신이 어떤 배경과 이유에서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 여러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암담했던 미래를 마주하고 있던 한 흑인 소년이 우뚝 일어서는 데 백인 부부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블라인드 사이드의 두 번째 의미, 바로 온갖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바로 그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지역과 상황에 대한 얘기가 바로 이 책의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