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오카 후미히코, 《부의 미술관》
미술 작품이 시대와 사회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상식과 같지만, 그것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공부하는 것은, 우선은 재미있고,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고,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일본의 타마미대의 니시오카 후미히코의 《부의 미술관》이 바로 그런 시대와 사회와 상호 작용하는 미술 작품을 잘 보여준다.
《부의 미술관》은 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지만, 그런 작품이 어떻게 나왔는지, 왜 그 시대에 호응을 받고 널리 받아들여졌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한다. 물론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의 논리에 관한 얘기가 많지만, 그것을 굳이 ‘부’라는 것으로 한정시킬 필요는 없어 보인다.
몇 가지로 내용을 나눠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먼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선호하는 그림이 달라졌다는 내용이다.
종교개혁 이후 교회를 중심으로 한 그림이 파괴되면서 오히려 집단 인물화나 보통 사람을 그린 그림들이 네덜란드 중심으로 엄청나게 그려진 역사가 대표적이다. 그렇게 해서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나왔고, 렘브란트의 <야경>이 나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든가 미켈란젤로의 그림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화가들이 궁정이나 교황청의 식객으로 인정받는 시대에 그런 신분을 떨쳐내고자 애를 썼던 인물들이다. 여기에는 17세기 이후 ‘신의 길드’와 ‘왕의 아카데미’가 대립한 후, 아카데미가 우세해지면서 인체 데생이 미술 교육의 필수적인 코스가 되었다는 얘기도 포함된다.
인물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르네상스에서 메디치 가문의 역할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메디치 가문이 예술을 후원한 것은 단순히 사명감이나 예술 애호 때문만은 아니라 금융업이라는 당시 기독교 입장에서는 죄를 짓는 행위를 부를 쌓은 데 대해 부채의식이 작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기서는 사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지금과 같이 인정을 받고,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폴 뒤랑뤼엘의 얘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15세기의 궁정 양식(이를테면, ‘카브리올 레그’와 ‘금테 액자’)을 이용해 특히 미국인들의 허위의식을 자극해 인상주의 그림을 거액에 팔아치웠다. 또한 비평을 통한 브랜드화가 미술품의 가치를 좌우하는 시대를 아주 적극적으로 이용한 인물도 폴 뒤랑뤼엘이었다. 물론 여기서는 19세기 초 파리 출판계에서 초월적 인기를 누렸던 샤를 들로네 자작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지만 말이다. 샤를 들로네 자작은 필명이고 실제로는 여성작가인 델핀 드 지라르댕이었다는 얘기.
약간의 아쉬움은 이게 겨우 여럽 개의 이야기로 끝난다는 점이다. 더 많은 얘기가 숨어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예술과 사회는 늘 공명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