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이야기, 혹은 희망의 이야기

데니스 존슨, 《기차의 꿈》

by ENA

이 짧은 소설은 희망의 이야기일까, 절망의 이야기일까?


부모가 죽고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기차를 타고 내려와 고모, 고모부와 살다 결국은 혼자가 된 청년이 한 여인이 만나 딸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돈을 벌러 갔다 온 사이 산불로 가족을 잃어버린 로버트 그레이니어. 여기까지만 보면 절망의 이야기다.


가족을 잃은 것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하고 또 일하더라도 남는 것은 허망함뿐이었다. 산속에서 고독한 삶을 살아갔다. 다른 여인도 만나지 않았다. 기차 소리를 들으며 깨기도 했고, 꿈속에서 아내를 만나기도 했다. 늑대 소녀를 만났고, 늑대 소녀를 딸이라 여겼다. 실제인지 환상인지 모르는 경험이었다. 떠난 늑대 소녀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갔다. 슬펐지만 좌절하지 않았고, 자신의 감각을 소중히 여겼고, 순응하며 살아갔다. 그의 상처에 대한 치유에는 계기가 없었다. 치유되었다는 근거도 없지만, 그는 낙담만으로 아무렇게나 살다가지 않았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부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을 최선을 다해서 살다갔다. 그렇게 살다간 인생이 과연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건 희망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레이니어는 여든 살이 넘어서 1960년대까지 살았다. 살아 있느 ㄴ동안 태평양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서부까지 여행한 적도 있지만,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동쪽으로 가장 멀리 간 곳은 몬태나주 경계선 안쪽으로 40마일 거리인 리비였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한 명, 아내 글래디스였으며, 재산은 땅 1에이커,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였다. 그는 술에 취한 적이 없고, 총기를 구매한 적도 없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기차를 자주 탔지만 자동차도 많이 탔고, 비행기도 한 번 타본 적이 있었다. 말년의 10년 동안 그는 읍내에 나올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몰랐으며, 자손을 남기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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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존슨은 2017년 필립 로스의 적극 추천에 이은 만장일치로 미국 의회도서관 소설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지만, 시상식을 앞두고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기차의 꿈》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짧지만 긴 이야기가 영상에는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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