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욱, 《형태의 문화사》
형태, 그러니까 생김새가 쓰임을 좌우한다. 너무도 당연한 말 같지만, 그것을 얘기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사실 위험하기까지 하다. 어떤 모양이 특정한 쓰임새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다보면 자칫 목적론에 다다르기도 한다. 사람의 코가 이렇게 생긴 것은 안경을 쓰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 같은 거 말이다. 그런 목적론적인 설명은 재미있는 설명이지만 진실이 아니며, 세상의 존재물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목적론은 그럴듯하다. 목적론을 배제해가며 생김새와 쓰임새 사이의 관계를 슬기롭게,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게 녹록치가 않다.
《형태의 문화사》의 목차를 둘러봤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재미있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자칫 목적론적인 해석이 난무하지는 않겠지만 가끔 그런 설명이 틈입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 들었다. 다 읽은 내 소감은, 역시 첫 번째 생각은 맞았고(재미있었고), 두 번재 생각은 기우였다는 것이다.
가령 안경이 지금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고 설명이 그렇다. 먼저 존재하고 있는 형태에 사람이 그에 걸맞는 생김새를 가진 물건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특히 콧등이 아니라 귓바퀴를 얘기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귓바뀌를 선반으로 이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안경이다. 지금은 안경다리를 양쪽 귓바퀴 윗면에 걸치는 방식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안경이 처음 개발된 중세 시대에 귀에 걸치는 방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125쪽)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몸의 형태’, ‘세상의 형태’, ‘문화의 형태’.
이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데는 제1부 몸의 형태이고, 새로운 것을 많은 배운 부분은 제2부 세상의 형태이고, 제일 의미있는 부분은 제3부 문화의 형태다.
우리가 달고 살아가는 몸의 형태에 대해서는 친숙하면서, 그런 것도 있었어? 그런 느낌을 읽었고, 세상이 지금 이 모양으로 생긴 것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으며, 우리가 간직하고, 혹은 바꾸어가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가 있었다.
그래도 굳이 가장 인상 깊은 대목들을 꼽으라면, ‘몸의 형태’를 다룬 제1부에 많은 몰려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개인적인 관심거리 때문일 듯도 한데, 야구공이 손가락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공이라는 것에서부터, 왜 박찬호의 행동(이단 옆차기)이 미국인들에게 충격이었는지에 대한 얘기는 모두 야구에 관한 것인데 그렇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무엇보다 눈에 관한 얘기가 흥미롭다. 다른 데서 읽어 알고 있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눈의 특성(흰자가 아주 큰 비율이 크고, 홍채와 뚜렷이 구별된다는 점)도 얘기하지만, 더불어 동공의 모양에 대한 얘기는 무릎을 치게 했다.
“동물의 동공은 먹이 채집 습성에 따라 크게 가로 방향, 세로 방향, 원형이라는 세 가지 다른 형태로 진화했다. 가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은 파노라마 형태의 가로 방향 시야를 확보하는 데 유리하므로, 넓은 지평선상에서 나타나는 포식자를 늘 감시해야 하는 말, 양, 염소 같은 초식동물에게 주로 나타난다. 세로로 긴 동공은 매복을 통해 먹이를 한 번에 공격하는 고양이, 여우, 악어 같은 육식동물에게 많이 나타난다. 주변시야 확보에는 불리하지만, 추적 대상인 먹잇감과의 거리를 밤낮의 광량 차이에 구애받지 않고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67~68쪽)
거기에 더불어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건물 내부가 어둡고 간접 조명이 많은 이유(그쪽 사람들이 옅은 색 눈동자와 큰 안구를 가지고 있어 주변 빛을 더 많이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다)도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분석이다.
‘이름 없는 센강의 여인 데스마스크’, ‘앤’와 관한 이야기,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캐럴리 스티드먼 등에서 나온 상류층의 ‘의도된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 등도 흥미로운 얘기다.
세상과 문화의 형태와 관련해서는 특히 한국과 한국인의 특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다. 정선과 신윤복의 그림에서 신발을 벗어놓은 위치에 대해(우리는 거의 맞추지만) 영국 학생들은 많은 수가 틀린다고 한다. 여기에서 한국인이 깨끗함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과연 그런가 싶은데, 우리의 가옥 구조와 다른 습관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옳고 그르다의 차원이 아닌 발을 딛고 살아가는 지역과 그동안의 역사가 만들어낸 문화적 차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주변의 모든 사물이 그냥 무심히 보이지 않는다. 물론 좀 있으면 전과 비슷하게 원래 그러려니 하는 태도로 사물을 쓰고, 주변의 건물을 보고, 이용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씩 생김새를 유심히 보고, 그래서 그런 생김새가 어떤 쓰임새를 가지게 되었는지, 혹은 반대로 어떤 쓰임새를 위해 어떤 모양으로 되어 있는지를 조금은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소양은 갖추게 되지 않았나 싶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