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아내 아일린, 지워져 버린 삶

애너 펀더, 《조지 오웰 뒤에서》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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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이 길어질 것 같다. 다층적으로 봐야 할 점이 많고, 읽으며 생각한 게 많아서 그렇다.


에릭 블레어, 그러니까 조지 오웰에게 아내가 있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찾아봤다. 그래도 조지 오웰의 작품들을 읽었고, 그와 관련된 책도 몇 권 읽었는데, 과연 내가 그의 아내에 관해서 언급한 적이 있나 하고. 딱 하나 있었다. 레베카 솔닛이 쓴 《오웰의 장미》를 읽고서였다. 그런데... 이렇게 적었다. “아내가 죽고 상심했던 그가 결핵으로 망가진 몸으로(아마 죽음을 예감하지 않았을까?) 써간 그 작품” (https://blog.naver.com/kwansooko/222977062325). 그러니까 정확히는 난 단 한번도 오웰의 아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공범이다. 아주 말단에 위치하지만.


‘아일린 오쇼네시’(아일린 블레어라고 해야 하나?). 조지 오웰의 ‘첫 번째’ 아내의 이름이다(‘두 번째 결혼은 아일린이 죽고, 온갖 여인에게 청혼을 한 끝에 오웰이 죽기 얼마 전 병상에서 이루어졌다). 조지 오웰의 서사에서 사라진 이름. 알고 보면 사라져서는 안되는 이름이지만 교묘하게 은폐되고, 하찮아져서, 결국은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이름이다. 애너 펀더는 이 이름을 되살린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린 책은 클레어 데더러의 《괴물들》이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더러운 추문에 관한 이야기. 숭배와 혐오 사이의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https://blog.naver.com/kwansooko/224136820364). 거기에 조지 오웰은 없었다. 클레어 데더러가 알고 있었다면 조지 오웰에 관한 이야기도 한 챕터를 차지했었으려나.


애너 펀더가 아일린을 복원하면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한 가지가 아니다. 우선은 분명하게 조지 오웰이다. 아일린이라는 존재, 아내로서, 생계 부양자로서, 가사노동자로서, 타자 및 교열 작업자로서, 작품에 대한 결정적 조언자로서, 심부름꾼로서, 그의 생명을 살리고 작품까지 살려낸 투사로서의 아일린을 자신의 글에서 교묘하게 삭제하거나 역할을 축소했다. 그보다 더한 것은 아내로서 굴욕감이 들 정도로, 다른 여자들을 쫓아다니며 온갖 추문을 만들었고, 성관계를 맺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심지어 강간과 같은 행위로). 애너 펀더는 조지 오웰이라는 위대한 작가를 지워버리지는 않고 있지만, 그의 찌질하고도 무책임하고,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다.


애나 펀더는 조지 오웰의 전기를 쓴 작가들에게도 비판을 가한다. 그녀는 여섯 권의 전기를 모두 읽었다. 모두 교묘한 은폐에 동조하고 있었다. 조지 오웰에게 불리한 것은 축소하거나, 혹은 다른 식의 해석을 통해서 옹호했다. 작가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가부장제에 대한 날을 세운다. 여성의 가정에서의 노동을 당연시여기면서, 여러 역할을 지워버리는 일은 바로 제도적이다. 바로 가부장제라는 폭력적인 허구다. 그 예로 조지 오웰을 들 뿐이다.


이 책의 광고 포인트는 물론, 조지 오웰의 위선적 행동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조지 오웰과는 다른 조지 오웰을 폭로하는 책이라는 데 더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처음 집어 든 사람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다소 충격적이고, 또 흥미를 자아낸다. 그래서 가부장제,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은, 어쩌면 ‘또 그 얘기?’라며 심드렁하게 넘겨버릴 지도 모른다. (많은 남성의 경우, 나 같은) 혹은 내가 조지 오웰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사실은 조지 오웰이라는 존재, 아일린이라는 존재는 이야기의 방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든다. 특히 내가 가진 ‘시간’이라는 재화가 내 아내의 희생에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하려고 해도, 또 그게 조지 오웰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기울어진 관계라는 것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어찌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에 작은 부담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읽으며 많은 부분에 딱지를 붙여 놓았다. 그것들을 떼어내며 분류하고, 느낌을 다시 적어본다.


“이렇게 해서 나는 작품에서 삶으로, 그 남자에게서 그의 아내에게로 옮겨 가게 되었다.” (35쪽)

- 애나 펀더는 조지 오웰의 팬이었다. 여전히 그렇다고 한다. 적어도 작품에 관해서만큼은. 그런 그녀는 아일린이 친구인 노라 사임스 마일즈에게 남긴 여섯 통의 편지를 통해 아일린을 복원해내고, 커다란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1934년에는 <세기 말, 1984>라는 제목의 디스토피아적인 시를 발표” (46쪽)

“그 시는 1984년을 배경으로 텔레파시와 세뇌가 성행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79쪽)

- 조지 오웰의 얘기가 아니라 아일린의 얘기다.

- 더불어 《1984》는 아일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근무하던 세너트 하우스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347쪽)


“오웰은 가짜 결백함을 드러내는 이 정신적 상태에 이름을 붙이고, 그럼으로써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신조어 중 하나인 ‘이중사고(doublethink)’를 만들어 낼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65쪽)

- 조지 오웰 여성에 관해서만큼은 스스로 이중사고를 하고 있었다는 아이러니.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1933년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작품이 실패하더라도 아버지가 수치스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오웰은 말했다.” (68쪽)


“아내는 남자에게 두 개의 삶을 선사한다. 떠날 수 있는 삶과 돌아와 누릴 수 있는 삶을.” (145쪽)


“능동태를 쓸 수 있는 곳에 절대 수동태를 쓰지 마라.”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

“《카탈로니아 찬가》를 다시 읽으며 나느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아일린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서였다.” (170쪽)

“오웰은 ‘내 아내’라는 표현을 37회 사용한다.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아일린의 이름은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름 없이는 어떤 인물도 살아날 수 없다.” (262쪽)

- 오웰은 아일린에 관한 부분에서만큼은 고집스럽게 수동태로 일관했다. 애나 펀더의 분석이다. 그래서 이 인용을 굳이 하고 있다.

- 《카탈로니아 찬가》에 아내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일린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으며, 또한 수동태로 일관하고 있을 뿐.


“텍스트 속에 있어야 했으나 없는 존재가 누구인지 일단 깨닫게 되자, 그 전기들은 전기 작가와 주인공 사이에 이루어진 기이한 협업에 결과물처럼 보였다.” (101쪽)

“오웰의 작가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결혼 생활의 시작과 겹친다는 건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130쪽)

- 조지 오웰의 전기 작가들은 조지 오웰을 철저히 따랐다. 적어도 아일린에 대한 태도만큼은.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것도 있다. 조지 오웰에게서 “거침 없는 감정 표현, 관대하고 자비로운 태도,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는 경험도 실상은 복잡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은 초기 작품에는 없었던 것이라고 한다. 아일린의 영향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동물농장》은 거의 조지 오웰과 아일린의 협업에 가깝다(고 애나 펀더는 주장한다). 스탈린 체제에 대한 비판에 관한 에세이를 쓰려던 조지 오웰을 설득해서 우화 형식으로 쓰도록 한 것이 아일린이었다고 한다.

“이 전기 작가는 《동물농장》을 미리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하겠다. 이는 다른 존재들과 온갖 생명체들을 더 생생하고, 더 인정많고, 더 익살스럽게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이 아일린에게서 비롯되엇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이다.” (293쪽)

“《동물농장》의 아이디어가 탄생한 건 킬번의 그 집에서였다.” (416쪽)

“그리고 만약 《동물농장》이 그 가벼운 터치와 절제력에 있어 그토록 완벽한(거의 ‘오웰답지 않은’) 이야기라면, 그 공의 일부는 아일린과의 대화에서 받은 영향, 그리고 아일린의 명석하고 위트 있는 지성에 돌아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419쪽) (토스코 파이벨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책(《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에서 에피소드처럼 썼던 이야기도 나온다. 조지 오웰은 최초로 개발된 결핵용 항생제 스트렙토마이신을 영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공급받은 인물이다. 내가 다른 책에서 읽었던 것은 그가 그 약으로 치료하더라도 죽을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해서 양보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거기까지는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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