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존슨, <지식인의 두 얼굴
근현대사에는 대중들의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글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이 쓴 글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의 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지식인의 두 얼굴》에서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폴 존슨은 지식인들의 겉과 다른 속을 헤집고 있다. 장 자크 루소에서 시작해서(사실상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들은 바로 프랑스대혁명을 전후해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공산당 선언》의 카를 마르크스, 현대 희곡의 대가 헨리크 입센,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등의 명작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수학자에서 시작하여 철학자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버트런드 러셀, 실존주의의 창시자이자, 지성인으로 칭송받았던 장 폴 사르트르, 그리고 조지 오웰, 노엄 촘스키까지, 누가 보더라도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인물들에 대해 강력한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각각의 지식인들이 활동한 무대도 다르고, 그들의 주장도 달랐지만, 모든 지식인들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것은 바로 그들의 글과 그들의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글에서는 여성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실제 삶에서는 여성을 자신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든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야기했지만, 정작은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는 무지했고, 노동자를 거의 만나지도 않았다든가 하는 것이다. 행동하는 지성인 체 했지만, 정작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뒤로 물러섰다든가, 사회주의 이념을 주장하는 듯 했지만, 뒤로는 돈을 꾸준히 챙겼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그런 지식인들의 ‘작태’들을 보면 분노가 일 것이다. 아마 폴 존슨은 그걸 노렸을 것이다. 대중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지식인들의 도덕적 신뢰도를 떨어뜨려, 인간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회의감이 들도록 해서 그들의 주장까지도 무너뜨리려는 의도인 게 분명하다.
물론 이렇게 두 얼굴을 지닌 지식인들의 행태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도 있고, 처음 알게 된 것도 있지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폴 존슨의 의도와 함께 그가 선정한 지식인들의 면모를 보면 다분히 편향된 시각을 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그가 폭로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신뢰감이 떨어진다.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면모는 모두 좌파, 혹은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라든가 제국주의 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던 인물들이다. 그들의 이중적 면모를 폭로하는 것이 그런 시각 자체에 대한 폭로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럼 그들과 대립되는 지점에 서 있었던 다른 류의 지식인들은 어떤가? 하는 식의 대응은 유치하긴 하다. 하지만 사상과 주장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들의 사생활에 대한 비판으로 그들의 사상과 주장의 정당성을 깎아내리려 하는 것도 좀 비겁한 게 아닌가 싶다. 겉과 속이 같지 않았던 지식들의 행태도 역겹지만, 그만큼 이 책의 내용도 역겹다. 그래도 끝까지 참으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