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을 읽어야 할 이유

장강명,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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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책 완독은 다른 행위로 대체하기 어려운,

독자의 사고체계에 가해지는 일종의 충격입니다.

700쪽 이상인 책을 한 번이라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이후 모든 텍스트를 대하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장강명 작가의 위의 말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벽돌책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미 부여로는 더할 나위 없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벽돌책이라는 분량적 형식을 너무 강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돌책을 통과한 독자에게 보내는 찬사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한다.

나도 꽤 많은 벽돌책을 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차례> 부분을 놓치고 읽기 시작했는데, 내가 읽은 책이 예상외로 많이 등장해서 다소 놀랄 정도였다. 특별히 벽돌책이라고 멀리하거나 하진 않아 왔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 그럼에도 그런 책을 사놓거나 대출 한 후 바로 읽지는 못한다. 어느 정도 각오의 시간이 필요하고, 읽기 시작할 때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곤 한다. 벽돌책이란, 어쨌든 쉽지 않다. 그래서 의미가 있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별로 벽돌로 생각하지 않았던 책이 벽돌책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도 발견한다. 장강명 작가는 700쪽 이상의 책을 벽돌책으로 정의했다(여기에 어떤 근거는 없어 보인다). 나는 그런 정의를 해본 적은 없는데(‘벽돌책’이라 써본 기억도 별로 없다), 만약 그런 비슷한 정의를 한다면 그것보다는 책의 페이지 수보다는 읽는 데 들이는 시간을 두고 할 것 같다(아무리 열심히 읽더라도 하루 만에는 절대 읽지 못하는 책, 그런 식으로). 그리고 분량만 따지고 봐도 좀 더 기준이 엄격해질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책의 분량을 얘기할 때는 책 전체의 페이지를 따지지 않고, 본문만 따지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 바로 직전에 읽은 에드워드 피시먼의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는 장강명 작가라면 883쪽으로 계산을 해겠지만, 나라면 <감사의 글> 직전까지로 계산해서 735쪽이라 인식하는 것이다(그래도 이 책은 장강명 작가의 기준으로는 ‘벽돌책’이다). 물론 그런 책을 읽고 읽는 감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데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사실 그런 기준쯤은 아무래도 좋다. 긴 호흡으로 책을 읽는 행위는 점점 드물어지고 있는, 마치 ‘신기한’ 행동처럼 여겨지는데, 장강명 작가는 바로 그런 드물어지고 있는 행동의 가치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복잡한 사고의 흐름을, 과정을 음미해가며 고생하며 읽는 행위야말로, 사실은 AI 시대에 필요한 덕목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 책 속의 등장 인물과 교감하며 얻는 즐거움, 혹은 애틋함도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랬었나 싶어 곰곰 떠올려보면, 정말 그랬다.


그런데 한 가지 좀 씁쓸한 것도 하나 발견했다. 거의 중간에 이를 데까지 우리나라 작가의 책이 없었다. 그때쯤 내가 떠올린 것은 박지리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었다. 장강명 작가가 이 책에 대해 쓴 글도 떠올랐다. 왜 나오지 않지? 하는 순간 탁! 등장했다. 73번째 책으로. 사실,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왜 이처럼 우리나라 작가의 책은 없을까 하는 데 대한 생각이다.


물론 우리나라 작가의 책 중에도 벽돌책이 있겠지만, 그 비율로 보면 벽돌책에는 유독 번역서가 많다. 장강명 작가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책들을 보더라도 그렇다. 나는 그 이유가 아무래도 독서 인구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5천만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로 된 책과 수억, 수십 억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로 된 책은 시장부터가 다르다. 독서율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수억 명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권 작가는 훨씬 큰 시장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오랫동안 자료를 모으고, 또 오랜 기간 동안 집필 시간을 가져도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업 작가는 생계를 위해서도 1년에 여러 권의 책을 내놓아야만 한다. 너무 씁쓸한 운동장이다. 우리나라에 왜 좋은 논픽션 작가가 나오지 않는지에 관한 내 가설 중의 하나다. 나는 유력한 가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서 소개하는 벽돌책도 대부분(단 2권을 제외하고는. 다른 하나도 추리소설을 모아놓은 책이다) 번역서다.

나도 장강명 작가처럼 책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 읽은 책은 다른 이는 어떻게 읽었는지가 궁금하고(혹은 내용을 다시 되새길 수 있고), 읽지 않은 책은, 그 가운데 내가 앞으로 읽어야 할 도서 목록에 넣을 수가 있다. 여기서도 그런 책을 몇 개 골라봤다.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

어우양잉즈의 《용과 독수리의 제국》

《뉴욕타임스 과학》

그리고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

“어쩌면 벽돌책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현실이 단순하고 명쾌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 인터넷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한 쪽짜리 지식은 대개 엉성하거나 의미가 훼손된 상태임을 아는 것. 지적으로 겸손해지고 신중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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