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피시먼,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초크포인트(Chokepoint).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이 용어는 사전적으로는 ‘전략적 요충지’를 의미한다. 좀 더 자세히 찾아보면, 좁은 통로나 지점으로 흐름이 쉽게 막히거나 제한되는 곳이기 때문에 이 초크포인트가 막히면 연쇄적으로 파급 효과가 크다. 저자는 가장 대표적인 초크포인트로 보스포루스해협을 들고 있다.
저자는 이 초크포인트라는 개념을 국제 질서에 가져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기 재무부의 금융정보국과 이후에는 국무부에서 국제 업무를 담당했던 저자는 이 시기를 전후로 한 미국이 국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 이전과는 달라진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개념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경제, 그것도 금융 질서와 관련된 개념으로 말이다.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조금 더 알기 위해서는 저자가 재무부와 국무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가 한 일은 국제 제재와 관련한 일을 했다. 그러니까 (미국이 얘기하는) 깡패국가에 대해서 주로 경제와 관련된 제재 조치를 만들고 시행하는 일을 한 것이다. 뉴스에서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다.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며 뉴스에서 들었던, 그러나 잘 연결은 되지 않았던 일들이 연결이 되고, 그 이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씁쓸했다. 철저히 미국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거대하고도 강력한 조치들에, 그 조치의 상대국인 이란, 러시아,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국가들도 어쩔 수 없이 커다란 영향을 받고, 마치 장기판의 졸(卒)처럼 움직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 때문에 그렇다.
냉전의 시대가 끝나고 미국이 독주하는 시대가 오면서 세계화를 부르짖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한 국제 질서, 특히 경제적 이해관계가 서로 긴밀히 연결된 질서가 이루어지면서 평화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이후 이 흐름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세계 각지에서 분출하는 독자적인 움직임을 미국은 전통적인 힘으로 누를 수가 없었다. 힘이 없다기보다는 그 대가가 너무 컸다. 미국에 관해서도, 전 세계에 관해서도. 그래서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바로 경제 제재. 경제적으로 압력을 가해 어쩔 수 없이 굴복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그 시작은 아마도 북한이었다. 북한에 관해서는 초반에 매우 짧게 지나간다. 경제의 규모가 매우 작고, 또 너무 폐쇄되어 있어 효과가 별로 없었다고 보고 있다. 치밀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진짜 경제 제재의 역사는 이란에서 시작된다. 부시와 오바바 정부가 다뤘던 이란 문제에서 시작하여,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한 대응,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응, 그리고 다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응으로 이어진다. 이 대응은 전적으로 미국이 쥔 금융과 무역 등의 절대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다. 해당 국가의 권부나 중요 기업의 돈줄을 막고 어쩔 수 없이 요구 사항을 들 수밖에 없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경제 전쟁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이 전략은 그냥 무조건 경제적으로 혼쭐을 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고민은 이러한 제재 조치가 미국을 비록한 서구 국가들에게는 최소한으로 피해가 와야 한다. 이를테면, 이란이나 러시아의 경제를 떠받치는 석유에 관해 손을 보면, 유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미국 국민이나 다른 국가의 고통이 된다. 중국을 제재하면 많은 필수품들의 가격이 상승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자산이 아니라 부채가 되기 시작했다.” 이걸 최소화하면서 해당 국가에 고통을 주면서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미션이 저자를 비롯한 미국 재무부, 상무부, 국무부의 엘리트들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이 전략은 성공하기도 했고, 실패하기도 했다. 저자는 주로 성공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장기적이고 많은 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바로 현재의 상황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경제 제재라는 수단을 내던지고 이란에 대해 무력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러시아에는 오히려 회생의 기회를 주고 있다. 이건 그동안의 경제 전쟁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일까?
어쨌든 이제 좀 알겠다.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이 새로운 시대에 미국이 어떤 수단을 가지고 세계 질서를 유지하고, 자국의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 하는지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무척이나 의문이지만(그래서 서글프지만), 그래도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논리로, 어떤 수단으로 이뤄지는지를 아는 것은 다른 일이리라.
“그 나라는, 바로 이란이었다.” (95쪽)
“뱅크 대 탱크(Banks vs. Tanks)” (586쪽)
“모든 시대는 그 시대를 파괴하는 씨앗을 품고 있다.” (7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