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생존 조건, '헐렁한 적합도 공간'

브룩스‧ 에이고스타, 《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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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때는 오지 않는다》를 읽고 바로 《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었으니 뭔가 연결된 느낌이다. 물론 다른 의미의 ‘완벽’을 얘기하고는 있지만, 어쩌면 일맥상통한다는 느낌도 있다. 독성학자 최진희에게는 과학자로서 완벽을 추구하면서 때를 놓치기보다는 현재 최선의 답을 내놓고 제안을 한다는 의미인데, 두 명의 현장생물학자이자 진화학자에게는 진화적 의미에서 최적(the fittest)이 아니라 단순한 적자(the fit)로서 꼭 살아남을 만큼만 적합도를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둘 다 완벽하지 않음에 관한 인식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의지와 여지를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연결된다.


그런데 이 책은 또 바로 전에 읽었던 스티븐 그린블랫과 마틴 애덤스의 《셰익스피어와 프로이트》와도 묘하게 연결된다. 이 책의 원제도 그렇고, 주제도 모두 ‘두 번째 기회’인데, 바로 《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도 두 번째 기회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티븐 그린블랫 등은 개인으로서 두 번째 기회를 이야기하고, 여기서는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혹은 가질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얘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어찌 되었든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얘기다. 심지어 《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는 바로 그 ‘두 번째 기회’라는 말을 쓰고 있기도 하다(“인류가 손 놓고 있다가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되더라도, 생물권의 4법칙을 지침으로 삼는다면 두 번째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421쪽)


아무튼 내 독서 경험과 빗댄 이 책의 의미는 그렇고, 이 책은 상당히 큰 기획이다. 진화의 원리를 설명하고, 인류사를 훑는다. 인류사의 끝, 바로 현재는 위기라는 인식이 있고, 이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한 방도를 고민한다. 그 해결책은 앞에서 설명했던, 진화, 다윈의 혜안이다.


인류를 존속시키기 위한 해결책으로서 진화의 원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왔던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진화는 최적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적절한 것‘들’을 선택해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헐렁한 적합도 공간’이라는 개념이 나오고, ‘완벽하지 않은 것’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하다. 자연선택은 여러 변이들 가운데서 처해 있는 환경에 적절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원리인데, 여러 변이라는 선택의 재료는 원래 ‘가장’ 적절한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살아남아 존재하고 있는 생물체는 그때 그때마다 최적자가 이어온 것이 아니라 적당한 적절한 것들이 어찌어찌 살아 남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진화의 원리는 인류의 생존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것 역시 단순하다면 단순할 수 있다. 진화의 원리는 경쟁과 배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적정 기술 중에서 고난의 시대를 헤쳐갈 수 있는 기술이 나올 것이고, 그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즉, 다양성이 필요하다. 다양성은 어떻게 나올까? 그것은 배제와 경쟁, 나아가 전쟁과 같은 폭력을 통해서는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너무 간략하고 거칠게 정리했지만, 이 정도라도 의미는 전달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다만 저자들의 제안들이 어느 정도나 현실화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솔직히 의문이다. 저자들은 그런 의미를 갖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저자들의 제안을 진지하고 고민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많이 읽히고, 또 이 책에 대해 심각하고 토론하는 사람이 많아야 할 텐데... 아쉽게도 그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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