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라인 도즈 페넉, 《야만의 해변에서》
“인디저너스 방문자들은 유럽을 정치적 중심지로도 보면서, 지배자와 거지, 풍요로움과 굶주림, 시민들에 대한 예의와 극단의 폭력이 공존하는 야만의 해안으로도 보았다.” (284쪽)
제목 ‘야만의 해변(Savage shores)’에 대한 진실에서부터 이 책은 애초의 추측을 완전히 뒤집는다. 우리가 ‘야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두고 봤을 때 압도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가리킬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하게 지적한다. “인디저너스 여행자들에게 유럽은 ‘야만의 해변’이었다. 그곳은 자원이 넘쳐나는데도 불평등과 빈곤이 만연했고, 침략 이전의 가치와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땅이었다.” ‘야만의 해변’은 아메리카의 토착민이 여러 가지 이유로 대서양을 건너 도달한 유럽의 해변을 가리킨다.
‘인디저너스(Indigenous)’.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이 용어를 쓰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끝까지 이 용어를 쓰고 있으며, 옮긴이도 이 용어를 달리 번역하지 않고, 그냥 인디저너스라고 쓰고 있다. 이미 인디언, 혹은 인디오(그러고보니 이 용어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었다)라는 용어가 잘못된, 편견에 찬 용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용어를 찾게 되는데, 저자는 여러 용어(이를테면, ‘원주민(Native)’같은)를 검토한 후에 인디저너스라는 용어를 채택한다. 이 용어는 굳이 번역한다면 ‘토착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디언을 ‘인도사람’이라고 번역하지 않듯이 그냥 인디저너스라고 쓰고 있다. 이 용어는 국제연합이 선호하는 용어라고 한다.
우리는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한 사람들에 주목한다. 대부분의 책이 그 얘기를 한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한다. 대부분은 자랑스럽지 못한 일이지만, 가끔은 환호성이 이는 이야기도 있다. 또 가끔 반대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록과도 같은 분량이며 별로 주목하지도 않는다. 그 뱡향을 주목하는 경우는 이른바 ‘콜럼버스의 교환’에서 여러 작물들의 이동을 이야기할 때다.
그러나 저자는 그 반대 방향을 이야기한다. 콜럼버스의 항해 때부터 인디저너스들은 유럽으로 향했다. 대부분 자발적인 이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은 역사에 큰 공백을 남기는 일이다. 저자는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자료들, 애매하게 서술된 자료들, 숨어 있는 자료들을 찾아내 이를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냈다. 바로 노예, 중재자, 외교관, 상인, 가족으로서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 발을 디딘 인디저너스의 얘기.
이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쉽게 유럽에 정복당한 아메리카인, 즉 인디저너스의 비극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에게 비극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건너간 인디저너스 대부분은 비극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옹호하고(그래서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교역을 시도하고, 가족을 이루고 산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이 끼친 영향보다야 덜하겠지만, 그 반대의 영향도 분명히 있었으며, 현대의 유럽에는 인디저너스의 영향이 분명히 존재한다(“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두 문명 간 지식의 축적은 식민지에서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이루어진 것이다.”, 169쪽).
이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잉카라든가, 목테수마 등의 아메리카 대륙이 목락한 왕가, 혹은 고위층,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의 삶이다. 남자들은 그런 지위를 적극 이용하려 했고, 여자들 가운데는 정복자들의 아기를 낳거나, 결혼에 이르기도 했다. 물론,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그것이 자발적이라고 보기 어렵겠지만, 그밖의 정복민들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다음과 같은 기록과 같은 것들을 보면 말이다. 조선(대한제국)의 멸망 후 이왕가(李王家)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연상된다.
“인디저너스를 각자의 품격(calidad)에 맞게 지원하는 일에는 매우 많은 경비가 소요되었다. 1602년, 많은 이들이 잉카 제국의 마지막 적통 후계자라고 생각하는 돈 멜초르 카를로스 잉카는 스페인으로서의 이주 비용으로 6,000두카트나 되는 거금을 지원받았다. 스페인에서 그는 기사 작위를 받고 사치비에 더해서 그 자신과 후손들이 쓸 8,500두카트나 되는 거액의 연금까지 수령했다.” (245쪽)
인디저너스의 역사는 분명 비극의 역사다. 제국주의자, 식민주의자 들은 자신의 언어로 그들의 정복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다른 역사는 은폐했고, 없애버렸다. 그래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다른 역사가 있었다. 많이 사라져버렸지만, 그 작은 틈새로 비춰오는 진실의 빛이 있다. 역사는 복원되어야 한다.
* 내용이나 정보로 인상적인 부분들을 가져와 본다.
“‘포카혼타스’라고 잘못 알려진 여성의 이름은 마토아카이다. 그녀는 22세가 되기도 전에 영국에서 사망했는데, 그녀의 정체성은 400년 동안 이용당하고, 허구화되었으며, 착취되었다.” (24쪽)
“이 항해자들은 대부분 오늘날 타이노(Taino) 혹은 카립(Carib)이라고 알려진 지역의 주민이었다. ... (카리브 해(mar Caribe)라는 지명의 기원 된) ‘카림’이라는 단어는 스페인 제국과 가톨릭 교회에 의해서 ‘카니발(carnnibal, 식인종)’이라는 단어와 고의로 혼용되어 끔찍한 함의를 지니기도 했다.” (26쪽)
“평범한 사람들이 소박한 감자를 얻고 식민주의자들이 재빨리 감자의 가치를 깨달았다면, 유럽의 상류층은 감자를 질병의 치료제나 원인으로 보았다. 1619년 부르고뉴 공국에서는 감자 표면에 난 자국을 이유로 감자가 한센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금지했다. 반면, 이듬해 영국의 사 토비아스 베너는, (...) 결핵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칭송했다.” (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