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리, 《이토록 인간적인 능력》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갑자기 현대 문명이 종말을 맞고 일부의 사람만이 살아남은 가운데 내가 있다고 했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인류의 생존가 문명 부흥에 기여할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절망스럽게도 ‘nothing’!
나는 현대의 이기를 하나도 직접 만들어내지 못할뿐더러, 그 물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커녕, 어떻게 고칠지도 알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바보다. 그런데 그게 나 혼자만일까? 현대의 초분업화는 한 사람이 전체를 아우르는 능력을 앗아갔다. 그리고 디지털 문명으로 접어들면서는 직접 생각하고, 직접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마저 앗아갔다. 우리는 바보가 되었다.
그러한 세태를 비판한 책이 《편안함의 습격》, 《경험의 멸종》과 같은 책들이었다. 그런 책들이 편리함과 대리의 시대를 비판하면서 직접 몸으로 경험할 것을 강력하게 권하는 책이었다면, 그레이엄 리의 《이토록 인간적인 능력》은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가치 있는 능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것들을 어떻게 잃어가고 있으며,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그레이엄 리는 인간은 거의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디지털 문명의 폐해이고,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극대화되기 시작했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 직접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된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주도권을 잃고 있다. 그는 그런 능력을 12가지로 나누고 있다. 길찾기, 움직이기, 대화하기, 혼자있기, 읽기, 쓰기, 그리기, 만들기, 기억하기, 꿈꾸기, 생각하기, 시간인식.
각 장의 구성은 대체로 엇비슷하다. 각각의 능력이 어떻게 발휘되었었는지 구체적인 ‘역사’의 예를 든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읽어버리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제시한다. 읽기에 흥미로운 부분은 첫 번째 부분의 ‘역사’의 예이지만(말하고자 하는 능력과 정확히 맞는지 약간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도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부분은 마지막의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다. 모든 것을 다 따를 수는 없을 듯하지만, 정말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게 몇 가지는 있다.
디지털 기술 교육 전문가이자 해당 기업의 창립자이기도 한 저자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마치 낮잠을 통해 창의성을 유지했던 토머스 에디슨이 오늘날 창의성을 불러일으키는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인 인공조명을 발명했다는 아이러니와 비슷해보인다. 하지만 그런 이이기에 이 문제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으리라.
그가 지적하고 있는 이런 능력들은 뭔가 다시 생각해본다. 그게 단순히 ‘능력’일까? 사실은 그게 ‘인간’이지 않을까?(달리기를 “인간이라는 종의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본 것처럼, 58쪽) 이러한 특성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인간으로서 기능하게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의 관찰, 그의 조언들을 몇 가지 되새겨본다.
“공간적 사고는 추상적 사고, 상상력, 나아가 언어능력과 같은 다른 핵심적인 인지 기능들과 연결된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능동적으로 길을 찾는 활동이 줄어들면 알츠하이머병이나 치매가 더 일찍 발병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32~33쪽)
“근대 초기 커피하우스에서 이뤄진 대화에는 독특한 물리적 특성이 있었다. 건물 자체의 밀집된 공간, 그 안에서 공유된 사적인 공간, 그리고 음성을 보조하는 동작, 몸짓, 눈맞춤 같은 것들이 바로 다윈이 면밀하게 연구했던 인간 표정의 요소들이며 우리가 온라인으로 대화할 때 가장 많이 놓치는 것들이다.” (89쪽)
“손과 몸의 움직임은 우리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표현해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애초에 그 생각을 생성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대화 상대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생각을 정돈하려고 몸짓을 만들어낸다.” (90쪽)
“영상통화 중에 가상으로 만들어지는 근접감과 눈맞춤은 인간의 정신이 신체 접촉을 해독하도록 진화한 과정과 충돌한다. (...) 이것이 우리가 영상통화를 하면 피곤해지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102쪽)
“디지털 기기에 소비하는 시간이 그렇게 많은데도 우리가 그 기기에 쓰는 글의 양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 온라인에서 우리 스스로 정보를 만드는 시간보다 정보를 훑어보고, 선택하고, 소비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199쪽)
“우리는 온라인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느낄지 몰라도” (227쪽)
“새로운 검색어를 입력하는 대신 제시된 검색어를 선택만 하고 있을 때를 조심하라.” (238쪽)
“우리는 뭔가를 완전히 기억할수록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다.” (292쪽)
“우리의 기억이 곧 우리의 세계다.” (2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