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헤이거, 《텐 드럭스》
한 질병에 대한 약에 대해 지금과 같이 이렇게 전 세계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논평하는 경우는 처음일 것이다. 그러나 약 하나가 역사의 진로를 바꾸어 놓은 경우는 많았다. 다만 그것의 진행 상황을 전 세계인이 지켜보지 못했을 뿐이다.
토머스 헤이거는 능수능란한 솜씨로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약 10여 가지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나온 책들은 많다.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가 아닌가? 그런 약들의 개발 과정이라든가,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는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을 그런 책들을 통해서 충분히 파악해왔다. 그렇다면 《공기의 연금술》과 《감염의 전장에서》에서 그 역량을 확실하게 보여준 글쟁이 토머스 헤이거는 이 흥미로우면서도, 어쩌면 따분할 수 있는 주제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일단 토머스 헤이거는 각 장들을 일률적인 분량으로 나누지 않았다. 클로랄하이드레이트와 같은 최면제를 다룬 3장 “미키핀”은 10여 쪽에 불과한 반면, 클로르프로마진(CPZ)에서 비롯된 정신병약을 다룬 6장 “지구상의 마지막 미개척지”는 거의 50쪽이다. 그것은 어쩌면 관심의 정도일 수도 있고, 영향력의 정도일 수도 있지만, 약에 대해서 쓰는 데 좀 자유로워지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중요하게는, 가장 널리, 그리고 가장 자세하게 소개되는 약들은 제외했다. 아스피린이나 페니실린과 같은 약이다(페니실린은 설파제를 다룬 5장 “마법의 탄환”에 등장하지만, 조연의 위치일 뿐이다). 그가 그런 약들을 제외한 이유로 든 것은 “이미 식상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러면서 이 책은 상당한 변별력을 가지게 되었다. 남들이 전혀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가 더 많은 분량을 두고 쓰고 있는 약은 바로 아편과 아편으로부터 나온 약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중독을 치유하기 위한 또 다른 아편제들이다. 그냥 흥미로워서일까? 아니다. 이것들에 대한 얘기는, 그 자체로는 역시 ‘식상’할 수 있는 얘기지만, 이것들이 고리로 이어지면서 결국에 다다른 지점은 약의 중요한 특성과 현대 제약 산업의 성격이다.
우선 약의 특성인데, 그건 “세상에는 무조건 좋은 약도 없고, 무조건 나쁜 약도 없다”는 것이다. “서곡”에서 설명하고 있고, 본문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소위 ‘자이거 사이클(Seige cycle)’이다. 신약이 나오면 그 효과에 대해 과도한 찬사와 함께 광범위한 채택이 유도된다(1단계이자 허니문 기간). 그런 다음 그 약의 위험성이 지적되면서 처음의 신드롬이 가라앉고 의심이 깊어진다(2단계). 3단계는 그 약의 효능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고,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해하면서 균형 잡힌 태도를 가지게 된다. 토머스 헤이거는 대부분의 약이 이 사이클은 갖는다는 것을 바탕으로 약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것의 대표적인 게 바로 아편을 비롯한 약이라는 것이고, 아직도 그 주기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게 토머스 헤이거의 관점인 듯하다.
제약 회사에 관해서는 그들이 ‘돈’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도 수없이 얘기해온 것이지만) 커다란 제약회사들이 지금은 항생제 개발이 크게 투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더뎌진 이유로 낮은 열매를 다 따먹어버려서(즉, 이제 새로운 타겟을 찾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항생제는 감염을 치료해버리기 때문에 제약회사에 꾸준한 돈벌이가 되지 못해서라는 게 아주 설득력 있는 이유이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오랫동안 약을 먹어야 하는 만성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약효가 대체로 미미한” 약들을 개발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흐름은 거스를 수가 없지만 ‘약을 권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상황은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토머스 헤이거가 제약회사를 고발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다만 “의학사와 오늘날의 세계를 형성한 약물”에 대해서 재미있게 읽고(일단은 그게 우선이다), 그 흐름을 이해함으로써 조금은 약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약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그 약들이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 목구멍까지, 혹은 내 살갗까지 도달했는지 모른다. 복잡하기도 하고, 전문적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이유에는 의도적인 은폐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관심이고, 최소한의 행동이다(토머스 헤이거의 경우 그 관심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스타틴에 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