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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Nov 19. 2020

의학사와 오늘날의 세계를 형성한 약물들

토머스 헤이거, 《텐 드럭스》

한 질병에 대한 약에 대해 지금과 같이 이렇게 전 세계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논평하는 경우는 처음일 것이다그러나 약 하나가 역사의 진로를 바꾸어 놓은 경우는 많았다다만 그것의 진행 상황을 전 세계인이 지켜보지 못했을 뿐이다.

 

토머스 헤이거는 능수능란한 솜씨로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약 10여 가지를 다루고 있다사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나온 책들은 많다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가 아닌가그런 약들의 개발 과정이라든가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는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을 그런 책들을 통해서 충분히 파악해왔다그렇다면 공기의 연금술과 감염의 전장에서에서 그 역량을 확실하게 보여준 글쟁이 토머스 헤이거는 이 흥미로우면서도어쩌면 따분할 수 있는 주제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일단 토머스 헤이거는 각 장들을 일률적인 분량으로 나누지 않았다클로랄하이드레이트와 같은 최면제를 다룬 3장 미키핀은 10여 쪽에 불과한 반면클로르프로마진(CPZ)에서 비롯된 정신병약을 다룬 6장 지구상의 마지막 미개척지는 거의 50쪽이다그것은 어쩌면 관심의 정도일 수도 있고영향력의 정도일 수도 있지만약에 대해서 쓰는 데 좀 자유로워지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중요하게는가장 널리그리고 가장 자세하게 소개되는 약들은 제외했다아스피린이나 페니실린과 같은 약이다(페니실린은 설파제를 다룬 5장 마법의 탄환에 등장하지만조연의 위치일 뿐이다). 그가 그런 약들을 제외한 이유로 든 것은 이미 식상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그러면서 이 책은 상당한 변별력을 가지게 되었다남들이 전혀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가 더 많은 분량을 두고 쓰고 있는 약은 바로 아편과 아편으로부터 나온 약들그리고 그것에 대한 중독을 치유하기 위한 또 다른 아편제들이다그냥 흥미로워서일까아니다이것들에 대한 얘기는그 자체로는 역시 식상할 수 있는 얘기지만이것들이 고리로 이어지면서 결국에 다다른 지점은 약의 중요한 특성과 현대 제약 산업의 성격이다.

 

우선 약의 특성인데그건 세상에는 무조건 좋은 약도 없고무조건 나쁜 약도 없다는 것이다. “서곡에서 설명하고 있고본문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소위 자이거 사이클(Seige cycle)’이다신약이 나오면 그 효과에 대해 과도한 찬사와 함께 광범위한 채택이 유도된다(1단계이자 허니문 기간). 그런 다음 그 약의 위험성이 지적되면서 처음의 신드롬이 가라앉고 의심이 깊어진다(2단계). 3단계는 그 약의 효능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고부작용에 대해서도 이해하면서 균형 잡힌 태도를 가지게 된다토머스 헤이거는 대부분의 약이 이 사이클은 갖는다는 것을 바탕으로 약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그런 것의 대표적인 게 바로 아편을 비롯한 약이라는 것이고아직도 그 주기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게 토머스 헤이거의 관점인 듯하다.

 

제약 회사에 관해서는 그들이 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이를테면 (나도 수없이 얘기해온 것이지만커다란 제약회사들이 지금은 항생제 개발이 크게 투자하지 않는다그 이유는 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더뎌진 이유로 낮은 열매를 다 따먹어버려서(이제 새로운 타겟을 찾기가 힘들어서그런 것도 있지만항생제는 감염을 치료해버리기 때문에 제약회사에 꾸준한 돈벌이가 되지 못해서라는 게 아주 설득력 있는 이유이다그래서 제약회사들은 오랫동안 약을 먹어야 하는 만성질환 환자를 대상으로약효가 대체로 미미한” 약들을 개발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흐름은 거스를 수가 없지만 약을 권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상황은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토머스 헤이거가 제약회사를 고발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다만 의학사와 오늘날의 세계를 형성한 약물에 대해서 재미있게 읽고(일단은 그게 우선이다), 그 흐름을 이해함으로써 조금은 약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약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그럼에도 일반인들은 그 약들이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 목구멍까지혹은 내 살갗까지 도달했는지 모른다복잡하기도 하고전문적이기도 하지만또 한 가지 이유에는 의도적인 은폐도 있다고 본다그래서 필요한 것이 관심이고최소한의 행동이다(토머스 헤이거의 경우 그 관심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스타틴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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