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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Nov 18. 2020

벨 에포크 시대의 초상

줄리언 반스,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2015년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집에 있는 닥터 포치>라는 그림을 본다. 강렬한 그림이었다. 수염을 기른 멋있는 젊은 남자가 목에서부터 발까지 내려오는 빨간색(정확하게는 주홍색) 코트(혹은 실내 가운)를 입은 모습이다. 손목과 목에 주름 장식이 있는 하얀 리넨이 약간 드러나 있고, 코트 밖으로 한쪽 발이 나와 있다. 기다란 손가락. 왼손은 골반을 짚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 쪽을 저미고 있다. 마치 피아니스트의 손 같지만, 부인과 의사의 손이다. 사무엘 장 포치. 줄리언 반스는 이 그림을 보고 ‘멀고, 퇴폐적이고, 광적이고, 폭력적이고, 자기도취적이고, 신경증적인 벨 에포크’ 시대의 댄디보이이며, 저명한 부인과 의사이면서 바람둥이였던 닥터 포치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집에 있는 닥터 포치>의 모델이 된 사무엘 장 포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직업, 즉 저명한 부인과 의사(거의 개척한)였다는 것만으로 그를 설명할 수는 없다(그림의 설명은 부인과 의사라고만 되어 있지만). 그는 멋쟁이였으며, 호색가였지만, 또한 걱정하는 가족적 남자였다. 하지만 또한 ‘늘 호기심을 잃지 않는 의사’였고, ‘여행자’였고, ‘도회풍의 인물’이었다. 그는 다윈의 책을 번역하였고, 리스터의 소독법을 선구적으로 도입하였던, 그리고 “쇼비니즘은 무지의 한 형태다”라고 했던 ‘국제주의자, 합리주의자, 다윈주의자, 과학자, 모더니스트’였다. ‘절대 친구를 잃지 않는 남자’였고, 미친 시대에 제정신을 잃은 사람(아마도 드레퓌스를 옹호했기에?)이었다. 


그러나 정작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는 포치라는 한 사내의 삶에 대한 평전, 혹은 보고서는 아니다. ‘어디에나 있었던’ 그였기에 그를 쫓아가면 그와 얽힌, 당대의 수많은 명사들의 이름들이 튀어나왔다. 그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삶을 다시 살펴보면, 벨 에포크라는 전대미문의 시대의 사회상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는 결국 한 점의 초상화에서 비롯된 벨 에포크 시대의 초상이 된다.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수많은 명사들을 다 거명하는 것은 아마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포치는 소설가(이를테면 오스카 와일드나 플로베르, 마르셀 프루스트 같은), 화가(귀스타브 모로나 <집에 있는 닥터 포치>를 그린 존 싱어 사전트 같은), 과학자, 정치가, 배우 등등 영국과 프랑스에서 이름 알려진 거의 모든 인물들과 교류했다(물론 수많은 환자들과 환자 이상의 관계를 갖기도 했다). 그 인물들의 모든 삶이 벨 에포크 시대의 화려함, 퇴폐, 나른함, 그리고 활력을 만들었다. 줄리언 반스는 다양한 형식의 서술을 통해 그 시대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줄리언 반스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책을 쓸 당시의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브렉시트. 잉글랜드가 고립주의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어리석은 결정을 한 시점이었다. 다른 언어를 배우지 않는 잉글랜드인의 비천한 상상력과 자기 고립의 비참함을 얘기하면서도 비관적이지 않았다. 바로 이 인물, 포치가 그를 명랑하게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그의 다양한 면모는 어쩌면 시대의 초상이었고, 어떤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결함이 많았던 그 인물을 ‘일종의 영웅’으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를 심판하는 데 열심이다. 신경과민에 걸린 현재의 우리는 과거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는 의심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래서 악착같이 과거에 꼬투리를 잡고 비판하기에 열심인지 모른다. 줄리언 반스는 묻는다. “우리에게 심판한 무슨 권한이 있는가?” 과거를 과거대로 보자. 그렇게 보아야 하는 과거도 있는 법이다. 더 나은 과거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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