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문, 《예수의 후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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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후계자가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매우 쉬운 문제다.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나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바로 베드로 아닌가? 전세계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 자체가 공식적으로 베드로의 후계자이고, 제1대 교황을 베드로라고 하지 않는가? 그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하지만 역사학자 정기문은 이 자명할 듯한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정말 그런가? 만일 그렇다면 그건 언제부터 자명해졌는가?
정기문은 예수의 후계자로 처음부터 베드로가 확고하지 않았다고 한다(교황이라는 자리 자체가 1세기 말부터 로마 교회의 주교였고, 4세기 이후에야 교황이라 불렸다). 원시 기독교에는 여러 종파가 존재하고 있었고, 예수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여러 인물이 각축을 벌였다고 본다. 그 인물로는 주의 형제 야고보, 사도 요한, 쌍둥이 토마스, 마리아 막달레나, 바울로, 그리고 여기는 가리옷 유다까지 포함시키고 있다(다른 인물들과는 조금 의미는 다르지만).
베드로가 예수의 적통 후계자로서의 권위가 처음부터 확고했다는 인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된 계기는 1945년 이집트의 나일강 상류 지역인 나그함마디에서 나그함마디 문헌의 발견이다. 여기에는 원시 기독교의 다양한 종파에서 유통되는 많은 복음서가 새로이 발견되었고, 그에 따라서 당시의 단일하지 않았던 원시 기독교 내의 종파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정기문은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기존의 사(四)복음서와 바울로의 서신을 비롯한 신약성경은 물론 마그함마디 문헌, 그리고 기타 새로이 발견되고 해석된 문헌, 거기에 여러 신학자들의 견해들을 바탕으로 예수의 진정한 후계자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원시 기독교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고, 어떤 갈등 요소가 있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정리되어 최종적으로 베드로-바울로라는 적통이 인정되었는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사실 (내가 신자도 아니어서 더 그렇겠지만), 주의 형제 야고보에 대해서는 바로 며칠 전에 읽은 《교회가 가르쳐주지 않은 성경의 역사》에서야 그의 위상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 생전과 사후에 상당한 위치에서 교단을 이끄는 위치였다는 것(혹은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여기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베드로-바울로 중심의 기독교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유대인의 율법 문제가 중심이었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원시 기독교의 많은 종파들이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유대교이 한 종파라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종교적 편협성과 민족적 배타성에서 탈피하면서 기독교는 비로소 세계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업적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온 것이겠지만, 실질적인 공을 누구에게 주어야 한다면 당연히 바울로일 것이고, 그에 못지않게 베드로에게도 주어져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철저히 역사책으로 읽었다(그래서 매우 흥미로웠다). 정기문 교수가 여기의 내용을 많은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를 했는데, 이에 대한 신학자들의 비판적 논평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랬음직하다. 그런데 신학이 아니라 역사학이라면 그 비판의 내용과 방향이 좀 달라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 추론한 내용들에 대해서 단지 어떤 한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으니 틀렸다는 식의 비판은 믿음에는 분명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역사학과 관련해서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듯하다. 이 책은 교회의 정당성을 파괴하고 비하하기 위한 논의로서가 아니다. 원시 기독교의 다양한 논의들이 결국엔 유대인 중심의 종교에서 세계인의 종교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이 책의 가장 큰 주제는 그게 아닌가, 내게는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