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부 아키라의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는가』
좀 기분 나쁜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많은 개념어는 일본에서 왔다. 18, 9세기의 난학에서부터 비롯된 일본의 서양 문물 수입은 번역에서 비롯되었다. 번역은 일본에 없는 낯선 개념을 새로운 말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한자를 조합해서 만들기도 하고, 기존에 있던 말을 채택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말들은 일제 시대를 거치며 우리에게 그대로 들어왔다. 우리는 그게 일본으로부터 온 말이라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원래부터 한자말로 존재했던 것처럼 여기며) 아주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이를테면, 철학이니, 과학, 학교, 사회, 개인 같은 말들이다(물론 그뿐만이 아니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고종석이 여러 차례 쓰고 있다).
그런데 그런 번역어들이 일본에서 만들어지고 정착되는 과정은 어떠했을까? 번역가들은 어떤 의미로 그 말들을 만들어냈고, 초창기의 번역가들이 의도했던 대로 바로 정착되었을까? 야나부 아키라는 10개의 단어(개념어)를 통해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이 책의 제목은 ‘Freedom, 자유’를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원래 『번역어의 성립』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책을 다시 낸 것이다).
저자가 분석하고 있는 단어는 ‘사회(社會), 개인(個人), 근대(近代), 미(美), 연애(戀愛), 존재(存在), 자연(自然), 권리(權利), 자유(自由), 그(皮) (또는 그녀)’다(이 가운데 가장 의외인 것은 미(美)다. 그게 원래 일본에 없던 개념이라니…). 그리고 저자가 기대고 있는 이론은 ‘카세트 법칙’이다. 카세트 법칙이란,
“카세트(cassette)란 작은 보석상자를 의미하며, 내용물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매혹하고 끌어당기는 물건이다. ‘사회’도, 그리고 ‘개인’도 일찍이 이런 ‘카세트 효과’를 발휘한 단어였으며, 그 효과는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오늘날의 일본인에게도 여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50~51쪽)
저자는 많은 번역어의 정착에 이 카세트 효과가 상당 부분 작용했다고 하고 있는데, 이를 더 쉬운 말로 풀자면, 사람들이 어려운 한자말이나 영어를 쓰는 심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어려워 보이는 한자어에는 뭔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게 된다.”). 특히 원래 일본에는 없는 개념을 들여오는 경우 낯익은 단어를 쓰는 것보다 이미 알고 있는 한자를 조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냄으로써 낯섦을 유도하고, 그럼으로써 뭔가 대단한 개념처럼 보이게 만들게 되었고, 대중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친숙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위화감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럼 사회니, 개인, 근대와 같이 일본(나아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에 없던 개념이 도입된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이 society니, individual, modern이 의미하는 것과 똑 같은 것을 의미하는지, 아닌지와는 별로도 그러한 개념이 일본에 존재하는 것과 같이 되었다. 우리가 사회란 의미를 다양하게 사용하면서, 서양의 society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도 쓰긴 하지만, 사회란 단어를 쓰는 데 아무런 저항을 갖지 않는다.
더 관심을 갖고 읽게 되는 부분은, 자연(自然)이나 자유(自由)와 같은 원래 일본에(중국이나 우리에게도) 있던 단어를 새로운 의미로 사용하게 된 상황에 대한 것이다. 자연이 nature의, 자유가 freedom 혹은 liberty의 번역어이긴 하나, 자연에는 ‘자연스러운’에서와 같은 의미가, 자유에는 ‘내 맘대로, 제멋대로’와 같은 의미로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노자의 도가(道家)에서 사용한 ‘자연(自然)’이라는 의미는 nature와는 다른 것이었고, ‘그건 내 자유야!’라고 강변할 때의 자유(自由)는 서양이 힘들여 쌓아왔던 liberty, freedom의 개념과는 다른 것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서 서로의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이 책은 비록 일본이 서양어를 번역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그건 그 ‘과정’을 생략한 채로 우리에게 거의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단어를 그대로 우리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미마저도 거의 똑같다. 이제 다시 그것들을 우리말로 바꾸자 하는 것도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우리 것이나 다름 없어진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이 책이 더 의미가 있게 됐다. 일본어의 개념어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개념어를 이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