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최고의 인재들>
미국의 빛나는 시대로 기억되는 존 F. 케네디와 린든 존슨 시대에 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라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는가? 언론인 출신 역사학자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당시 미국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군, 베트남 대사관 등의 고위 정책 결정자들의 면면과 그들의 말, 행동, 심리 등을 통해 찾고 있다. 정말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당시 미국 정부의 중심에는 존 F. 케네디라는 영리하고 우아한 대통령(그는 스타일을 중시했다)에서부터 주로 동부의 하버드를 비롯한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의 최고 중의 최고(이 책의 제목 자체가 <The Best and The Brightest>다)인 인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비록 모든 사람의 차선책으로 선택되었지만 여러 부분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국무장관 딘 러스크, 전설적인 존재였던 백악관의 국가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 포드사의 회장에서 국방장관으로 옮겨간 로버트 맥나마라, 그들을 비롯하여 똑똑하고 눈부신 경력을 쌓아온 학자, 관료, 군 출신 엘리트들이었다. 그들은 기꺼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원했으며, 매우 열정적으로 그 일을 했다. 어찌 되었든 젊은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 그룹이 등장했을 때 그들의 능력을 의심받을 만한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참혹한 실패로 끝난 베트남 전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끌고 들어갔다. 비록 케네디 시절에는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진 않았지만, 이미 그 수렁 속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었고, 케네디가 테네시 주 덜레스에서 암살된 후 린든 존슨 시절에는 케네디 시절의 인재들의 기획 속에 완전히 진창에 빠져버렸다. 정말 왜 그랬을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핼버스탬은 베트남 전쟁 패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이 책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 1971년이었다) 수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그 답을 찾고 있다. 우선은 ‘오만과 편견’이 원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힘을 너무 믿었다. 스스로 뛰어났고, 인정받고 있었기에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했다. 그들은 명문 대학교의 졸업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뛰어난 지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 면모를 자랑하는 그들은 또한 미국이라는 절대 지지 않는 나라를 대표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어떤 자문도 필요 없이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프랑스의 실패 경험, 인도차이나라고 하는 지역의 특수성 같은 것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어쩌면 고려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다). 차선책으로 선택된 국무장관은 자신의 지위에만 몰두하여 그것을 지키려고만 하며 결정을 미루었고, 애매한 처신을 계속했고,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은 통계 수치를 맹신하며 미국의 승리를 장담했다. 젊고 우아한 대통령의 뒤를 이은 새로운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에 눈이 멀었었다. 웨스트모얼랜드와 같은 장군은 세계 총사령관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군대의 파견 확대만을 주장했다. 그래서 전쟁의 확대를 반대했던 조지 볼이라든가, 대니얼 앨즈버그와 같은 인물들의 조언은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힘으로 밀어 부치면 호찌민의 북베트남은 당연히 협상하러 나올 거라 잘못 판단했다. 오직 전진? 그러나 ‘힘의 오만’이었다.
이런 엘리트들의 정책 실패와 그로 인한 국가의 위기는 베트남 전쟁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케네디, 존슨과 베트남 전쟁은 너무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선한 의도를 가졌다지만(그것조차 확신할 수 있을까?), 그 선한 의도가 제대로 된 방향과 정책을 갖지 못한다면 완전히 실패할 수 있고, 오히려 악(惡)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미국의 베트남 전쟁은 너무나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쉽게 요약할 수는 없다. 다양한 인물들의 입체적인 면모와 시간에 따라 숨가쁘게 변해가는 상황은 그가 제기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 단 하나로 정해질 수 없다는 것을 반영한다. 단 하나의 실패의 요인을 지목하는 것도, 한 가지 접근법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당시의 오류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의 실패 역시 다양한 원인에서 벌어진 것이며,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도 다양할 수 있다. 그래서 핼버스템 역시 이렇게 두껍게 책을 쓸 수 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책은 방대하고, 술술 읽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가장 권력 가까이에 있는 인물들에 대해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어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다.
*** 핼버스탬은 비록 케네디 시대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존 F. 케네디라는 인물에 대한 애정은 버리지 않고 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는 케네디가 총탄에 가지만 않았다면 베트남 정책이 바뀌었을 거라는 암시를 하고 있다. 겨우 대통령에 당선된 그가 개인적 인기를 바탕으로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자신감을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는 중심에 섰을 것이라 보고 있다. 과연 그랬을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바램을 투사시키는 것도 역사를 바라보고, 역사를 통해 교훈을 찾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