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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Feb 06. 2021

능력주의에 대한 마이클 샌델의 이의제기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과연 ‘능력주의’는 공정한 것인가? (번역된 책 제목은 “공정하다는 착각”이지만, 이것은 마이클 샌델의 의도를 잘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공정하다는 착각”은 결론이다. 마이클 샌델은 결론을 던지지 않는다. 그는 능력주의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그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에 대해서 독자들보고 답을 해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능력주의라는 폭정”이라는 원제가 그 질문에 합당한 책 제목이었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능력에 따른 보상을 당연하다고, 공정하다고 여긴다. 대학입학에서 부정한 방법을 쓴 이들을 지탄하는데, 그 이유를 그게 공정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이클 샌델의 질문은 그게 공정하냐, 공정하지 않냐가 아니다. 그는 대학입학 과정에서 부정하지 않은 방법을 쓰면 옳은 것인가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온전히 학교 수업만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경우와 온갖 스펙을 쌓으며, 학원의 막대한 도움을 받으며, 입시 컨설팅을 통해 대입을 준비하는 경우를 비교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대학에 입학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과 아무런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고 졸업하고 좋은 직업을 얻은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다. 누구도 법을 어기지는 않고, 또 그 사람의 능력대로 대학을 가고 직업을 갖게 되었으니 이를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


온갖 합법적인 수단을 쓸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집안의 학생이 하버드대(우리라면 서울대? 의대?)에 갔다면 그는 그가 이룬 성과에 대해서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이룬 것이므로 공정하며 합당하다고 여길 것이고, 거기까지 이르지 못한 이들을 비웃고(겉으로는 아닐지라도 사회적으로는 분명히), 실패한 사람은 좌절하는 사회가 과연 공정한 사회인가? 아예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귀족이 그렇게 태어나서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것은 운에 의한 것이라고 여길 수 있는 사회가 오히려 좌절을 덜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샌델은 심각하게 질문을 던진다.


마이클 샌델의 질문은 사실 더 나아간다. 동일한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학업에서의 지능이라든가, 스포츠에서 운동능력이라든가 하는 능력에 따른 보상이 지금과 같이 차이가 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와 공동체에서 옳은 것인가?


어렵고도 불편한 질문이다. 만연하고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능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대전제에 대한 질문이어서이기도 하고, 아직 그런 능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단계에까지도 가지 못한 사회인데 그 너머까지 봐야 한다는 부담감, 좌절감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연설에서 ‘공정’을 얘기했을 때도 불안했다. 좋은 말이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또 믿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한 이야기인지, 너무 이상적인 것은 아닌지, 그것이 또 다른 족쇄가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고 궁금했다. 그냥 선언만이면 괜찮을 텐데, 과연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잇는 것인지...


마이클 샌델이 질문을 던진다고 했지만, 능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 진짜로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있기도 하다.

한 가지는 대학 입학에 관한 것인데,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현재 입학 정원이 3천 명 정도인 서울대에서 수학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만 명쯤 된다고 하면(실제로 그럴 것이다. 그보다 많을 수도), 그들을 놓고 그냥 추첨을 하자는 것이다. 시험 점수 1, 2점 차이로합격과 불합격으로 나누어 우월감과 좌절을 주는 대신 운으로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냐는 것이다. 점수 몇 점은 그날의 컨디션과 시험 문제에 대한 운으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니 어차피 운일 수 있었던 것을 능력으로 환원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운으로 생각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더라도 대학 교육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세금에 관한 것이다. 어떤 경제 역할이 명예와 인정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또한 공동체의 이익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토론을 바탕으로, 급여세의 일부 또는 전부를 없애고, 금융거래세(금융 거래 자체가 경제에 어떤 생산적인 가치를 더하는 것은 아니다)에 중과세하자는 제안을 한다.


두 가지 모두 논란이 많을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도 그냥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다만 이게 정말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는 토론이 이뤄진다는 얘기이며, 그 토론 속에서 능력주의에 대한 토의도 이뤄질 수 있으며, 과연 어떤 사회가 공동체를 위해 옳은 사회인지에 대한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반성도 하고, 반발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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