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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Feb 06. 2021

자본주의는 들판에서 비롯되었다! 바로 면화!

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산업혁명의 시작을 딱 어느 시점으로 정하라는 질문은 답하기가 곤란하겠지만 그래도 굳이 정하라면 대체로 1780년대를 얘기한다. 영국의 맨체스터에 방적기 공장들이 지어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인력이 아닌 기계의 힘으로, 대량 생산의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스벤 베커트는 여기서 기계, 대량 생산이 아니라 다른 단어에 방점을 찍는다. 방적기. 바로 면화를 이용하여 실을 뽑아내고, 옷감을 만들어 내는 기계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 기계 자체가, 공장이 자본주의의 시작을 일궈내지 않았다고 본다. 바로 들판, 면화를 재배하는 바로 그 들판에서 자본주의가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면화의 제국》은 바로 그 면화라는 작물이 어떻게 자본주의의 기원을 이루게 되고 성장과 함께 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면화를 통한 면직물 산업은 자본주의나 산업혁명 이전부터 20세기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제조업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유럽, 특히 영국은 면화가 생산되지 않는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면화를 재배하지 않으면서도 중국, 인도, 미국, 아프리카 등의 면화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생산된 면화를 기계를 이용하여 면직물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여 이익을 남기는 새로운 방식, 바로 그게 자본주의의 도래였다. 저자는 그런 체제를 전쟁자본주의(war capitalism)라고 명명하고 있다. 전쟁자본주의란 ‘노예제, 원주민 약탈, 제국의 팽창, 무력을 동원한 교역, 사람과 토지를 장악한 기업가’를 핵심으로 한 자본주의를 말한다. 즉, 임금 노동자 이전에 식민지에 대한 약탈, 노예에 대한 강제 노동이 우선했다는 얘기다. 산업자본주의는 바로 그 전쟁자본주의에 기대어 발달했다. 기존에는 노예, 식민지, 강제노동이 자본주의의 정수와는 벗어난 것으로 여겨왔지만(대신 자본주의하면 공장, 임금, 산업 등을 떠올린다) 면화를 통해서 본 자본주의의 역사는 바로 그 노예제, 식민주의, 강제노동이 핵심이었다. 문명과 야만? 그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것이다.



노예노동에 기초한 면화 제국주의는 남북전쟁을 기점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노예노동은 임금노동이라는 조금 더 근대적인 방식으로 바뀌었고, 전쟁자본주의는 산업자본주의로 완전히 그 중심을 넘겨주게 되었다. 그만큼 자본주의는 면화와 함께 시작하고, 성장하였다. 그것은 그 당시의 생산량과 종사자 인구 등을 보면 더 명확하다. 그런 제국주의 수탈의 상징이었던 면화가 인도에서와 같이(‘스와데시’) 탈식민화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만큼 면화는 1700년대 이후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근대와 현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면화 산업 얘기를 하면서 식민지 조선 얘기도 등장한다. 면화 산업은 근대화의 필수 조건이었고, 일본이 그것을 놓칠 수는 없었다. 1896년 한성의 일본 영사관에서 근무하던 와카마쓰 도사부로가 1902년 목포를 전근가면서 한반도의 남부가 면화 재배에 적절할 것이라 생각했고, 이로써 한반도가 (일본)제국을 위한 면화 생산 기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렇게 강제로 면화를 재배하게 된 식민지 조선의 농민들은 그 상황을 전세계적인 체제 속에서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전쟁자본주의의 수탈 경제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1912년 촬영된 일본 제국 관료와 조선의 면화재배인


《면화의 제국》은 전세계 곳곳을 종횡무진 누비기 때문에 방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만큼 자본주의의 발달에 관해 좀 색다른 시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리고 또한 이 면화 제국주의의 역사가 그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그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든 면화로 구축된 글로벌화한 순환으로 ‘자본주의의 끝없는 혁명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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